-
-
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은경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보았을 때 망각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망각을 다르게 해석하고, 망각함으로 유익을 얻고, 창의력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책인 줄 알았다. 참 신선하다 싶었고, 창의력 개발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란 생각에 호기심도 생겼는데 완전히 독자의 오해였다.
표지에 적혀 있는 책 소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망각의 힘’은 망각 하나에 대한 책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념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와 나눈 사소한 대화, 길을 가다 본 풍경, 모임에서 듣게 된 안부 인사, 날씨, 그림이나 책을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이 이 책의 소재이며 주제이다.
연륜이 있고, 학식이 깊은 연유인지 만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나 연상이 독창적이고 특별해서 책을 읽으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깊이 빠져서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푸른 산’을 읽고 나서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된다. 가까울수록 더 많이 알고,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발상이다. 유럽에서는 “명저를 읽었다면 작가를 만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고 한다.
눈과 귀의 노화를 이야기한 ‘귀와 눈’를 읽고 귀로 듣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되는데 일본인이 시각적 인간이 많아서 듣고 말하는 외국어를 잘 못한다는 예화가 재미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로 의외의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생각이 기발하다고 고개 끄덕이며 읽게 된다. 그래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옛 책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습관’처럼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있다. 습관의 힘이 무섭다거나, 무엇이든지 잘 하기 위해서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가끔 나오는 이런 진부한 이야기가 반가울 만큼 도야마 시게히코의 ‘망각의 힘’의 유별난 구석이 있다. 이런 수필집을 읽을 때면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이 공감할 만한 꽤 괜찮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름 혼자 흐뭇하거나, 보편 타당한 사고 방석에 안도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생각들은 이런 독서 경험을 뒤집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삶이 무료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뭔가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비록 이 책이 표지에 소개한 것처럼 망각을 통해 창의력을 길러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고 생각을 뒤집는다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 창의력을 길러 주는 것은 맞다.
익숙하여 편한 길은 아니었지만 새롭고, 의미 있는 생각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