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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172
조말선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조말선 시인의 새 시집이 반갑습니다. 제목에서 그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좋네요. 3번째 시집 이후 10년 만이라고 합니다. 제법 긴 그 세월에도 그의 반란은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로 이 세상의 모든 형상과 개념을 뒤집는 작업들입니다. 모든 강제 된 결정들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찔러보는 힘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5호는 어디입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4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드는 5호는 어디입니까 숫자의 배열로 찾기 힘든 5호는 아마도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 뒤에 있는 걸까요 하필 내가 그 문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나는 어떤 것을 숨길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이 방이 필요하지 않은 이방인입니다" (5호는 어디입니까)
모든 결정된 것들을 거부하는 힘, 그것은 조시인 특유의 감수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달리 감지하는 어떤 초단파의 감각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이 옷감은 가능해서 따뜻하다 울 수 있는 가능성과 울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사이에서 팔 한쪽을 잘라낸다면 나를 다 감싸 안을 수 있다 이 옷감은 옷이 되지 않아서 가능하다 추위를 막을 가능성과 추위를 못 막을 가능성 사이에서 다리 한쪽을 잘라낸다면 나는 폭 안길 것이다" (감수성)
그 감수성은 이렇게 의미의 끝없는 확장을 만들어내고, 확장은 가능성을 만들고, 그 가능성은 따뜻함까지 뭉뚱그려 전해주는 듯 합니다.
조말선 같은 힘을 가진 시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초기 작품들, ‘매우 가벼운 담론’과 ‘둥근 발작’을 보면서 그 당돌함과 당당함, 그리고 이를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특유의 발상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조시인이 여전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 반갑습니다. 사물과 현상들을 개념 속에 가두지 않는 미덕으로 새로운 세계를 무한정 만들어내는 마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