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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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은 드물었고 상점안의 상품은 더 드물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아주 파란 하늘이 있었다.

우리는 강자를 두려워하고 약자를 능욕하면서 이를 커다란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매일 이 사회에정의를 늘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가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첫날 문화관으로 출근하면서 문화관 사람들이하루 종일 대로를 돌아다니며 놀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부러 두 시간 늦게 출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 다음 나는 꿈에서 깼다. 당연히 온몸이 땀에 젖고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이전에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더이상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돌아온 기억에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운동장, 공개 비판대회, 사형당한 범인보다 먼저 죽어버린 그의 두 손, 트럭양쪽에 실탄이 장전된 콩을 들고 줄지어 타고 있던 군인들, 모래밭의 총살, 무쇠 추보다 더 위력이 컸던 탄환, 사형수의 뒤통수에 난 아주 작은 구멍과 앞이마를 뒤덮었던큰 구멍, 모래밭 위에 묻은 얼룩덜룩한 핏자국... 이처럼 무서운 광경이 하나하나 내 눈앞에 되살아났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문해보았다. 왜 항상 밤에꿈속에서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일까? 나는 내가 날에 너무나 많은 피비린내와 살인에 관해 쓰고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인과응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아마도 이른 새벽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차가운 땀으로 가득 찬 이불 속에서 나를 향해 경고했다.
"앞으로는 더이상 피비린내와 폭력이 가득한 이야기를써선 안 돼."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나는 ‘루쉰이라는 이 강대한 단어를 충분히 이용했다. 나의 성장 과정에서 혁명과 가난을 빼면 남는 것이라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뿐이었다. 논쟁은 내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의 사치품이었고 가난한 생활 속의 정신적 양식이었다.

당시의 삶은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과 무료한 자유, 그리고 공허한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 것이었다.

왜 과거의 ‘투기분자들과 오늘날의 노점상이 재물을몰수당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내는 생존 반응에 이처럼 커다란 차이가 생긴 것일까?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환경이 달라지면서 이에 따른 생존 반응도 달라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본적인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이처럼 흑백이 분명한 시대였다. 적은 영원히 착오를 범하고 우리는영원히 정확하다는 것이 그 시대의 인식이었다.

마오쩌둥 이후에는 "검은고양이든 흰 고양이는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고 한 덩샤오핑의 말이 오늘날 변화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한마디는 마오쩌둥의 사회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중국 사회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온 사실, 즉 잘못된 것과 정확한 것은 항상 같은 사물 안에 존재하며 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동시에 이 한마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켜주기도 했다.

30여 년 전 우리가 벽돌로 젊은 농민의 머리를 내리쳤을 때 그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하지만오늘날에는 ‘성관’ 대원 하나가 아무런 폭력도 휘두르지않고 그저 직무를 수행하면서 관련 법규에 따라 노점상의 수레와 물건을 몰수했을 뿐인데도 노점상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라는 단어가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확대되고 공허한 사상에서실제적 상황으로 변해버린 뒤, 오늘날 중국이 안고 있는사회문제의 확장과 사회갈등의 격화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선물은 또 다른 유형의 언어, 즉 자기손실을 전제로 삼는 언어였다. 바로이런 특성 때문에 선물은 사랑과 찬미, 존경의 단어가 되었다. 바로 이렇게 그는 농민들로 하여금 집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푸른 채소 두 포기 또는 토마토나 달걀 몇 개를 준비하게 했다. 푸른 채소와 토마토, 달걀 등을 자신에게 헌납하면서 동시에 찬미하고 존경하는 말을 바치게 했다. 빈손으로 그를 찾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상실한 벙어리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산채 현상이 오늘날 중국에 어떤 적극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산채 현상은 풀뿌리문화가 엘리트문화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민간이 정부에 던지는 도전장, 그리고 약자집단이 강자집단에 던지는도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은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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