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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 페미니즘의 관점
김동진 외 지음, 김동진 기획 / 학이시습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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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신분석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첫 회기 때, 상담가가 나에게 해준 말은 ‘장전된 총‘같다. 지금 당장 어디를 향해 겨눌지 모를 총을 장전 상태로. 분노, 우울, 무력…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동안을 그리 지냈다.

나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는가. 그동안의 나는 피해자와 동일시 했다. 10대 후반, 첫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을 겪으며.. 당시의 나는 그것이 폭력인줄을 몰랐다.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조차 없었다. 인터넷 익명게시판에만 고민글을 올릴뿐. 그런 남자친구를 사귈 당시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핸드폰을 부수고,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고… 집 안과 밖 어디에도 의지 할 곳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 나의 섹슈얼리티는 어디에서도 존중 받을 수 없었다. 나는 거세되었다. 신체/물리적 여성할례는 아니지만, 정신적 여성할례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도 스스로 욕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 청소년의 금기시 된 욕망. 그것이 죄악이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다.

2015년 시작된 ‘메르스 갤러리’ 이후 시작된 ‘미러링‘과 ‘남혐’의 흐름. 누군가는 날더러 저급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통쾌했다. 소위 말하는‘렏펨‘이나 ‘트펨’은 못 쫓아가도, 그들의 문화를 응원하고 통쾌해 했다. 기혼여성에 대한 혐오 맥락이 아쉽기는 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배신자‘입장에서는 그냥 짜부러져 있어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도 최근까지 ‘한남‘이라는 말을 일상용어로 사용하기도 했다.

혐오하는 방식은 재미가 있다. 공격성을 적당한 유머에 섞어 버무리는 형태… 인터넷 글이나 짤로 소비되며 확대 재생산 되기에 알맞다.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를 읽으며, 그런 유머에 낄낄 대었던, 자신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이 생겼다. 남자를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나… 가해자에 대한 비난을 하기 급급했지만,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는 내지 않았던 나... 어느 순간에는 ‘N번방‘ 이슈에 대한 뉴스를 보기 역겨워 회피하기도 했던 나… 나에 대한 반성을 하지만 더이상 무기력과 자기 비하에 빠지진 않겠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장, 향상, 재고, 확장의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젠더’라는 커다란 스펙트럼 안에 존재 하는 ‘나다움‘을 찾듯이. 가해자와피해자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로… 어느사이에 위치해있을까. 나의 지난 삶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나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사는 동안 소위 말하는 ‘빻은 소리’를 나 또한 얼마나 해왔던가. 가해자와 동시대에 살면서, ‘국산 몰카’, ‘국산 야동‘ 등이 범람하고, 취약한 여성 청소년들이 누군가에겐 타겟이 되는 세상임을 알며, 얼마나 회피하고 모르는 척 해왔던가. 타자화를 멈추고, 반성을 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누군가를 탓하지 말자. 사회구성원으로 책임을 함께 지자. 내가 서있는 이 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 한다.

올해 6살 아이를 공동육아에 보내며,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 소위 말하는 ‘빻은 소리‘에 대한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불편감에 대한 표현을 하거나,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대놓고 삿대짓을 하며 문제제기를 한 경우도 있고, 그와는 다른 생각을 고급 육아정보인것 처럼 제시한 경우도 있다. 공동체 안에서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동료는 없는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 자신이 과거에도 현재도 완벽할수 없듯이, ‘빻은 소리’ 하는 사람과 함께 가자. 공동체 안에서 나와 누군가를 구별짓지 말자. 그 사람이 바로 나의 거울이다. 공동체 안에서 토론을 하고, 합의를 만들었으면 한다. 누군가를 계몽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성장해나갈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나에게 장착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아이들을 잘키우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들의 교육을 변화시키려면, 우리 어른부터 변화되어야 한다. 당장 엄마 조합원들과 여성의 성적추구를 다룬 ‘아이엠비너스‘를 보고싶고, 아빠 조합원들과 ‘맨박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 보고 싶어졌다.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고, 동물권에 대해 고민해보고도 싶다. 소극적인 평화는 이제 거두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은유 선생님의 말처럼 ‘타인이라는 지옥을 포기하지 않고, 동등한 반려관계를 도모‘하고 싶다. 공동체 안에서 나혼자 앞서나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과 산을 함께 오르는 것처럼. 나 혼자 급하게 산을 올라외롭고 지치기 보다, 뒤이어 오는 사람을 돌아보고 손내밀고 기대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를 읽는 내내 전체 본문에 밑줄을 치고 싶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절절히 와닿았고,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것만으로도 나와 동시대에 함께 세상을 만들어갈 든든한 지원군이 살아있음에 안도감과 연대감을 느꼈다. 이제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무력감에서 나아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음을 알고 서로 다독이는, 그런 30대 중후반을 살아가고 싶다. 큰 영감과 전환의 계기를 준 여러 스승, 책의 저자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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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 내려놓기 - 남보다 예민해서 힘든 사람들을 위한 내 안의 바늘 길들이기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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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혹은 상대의 예민함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진단을 하기에는 좋다. 그러나 내려놓은 방법은? 글쎄. 성의가 없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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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의 재발견 - 센스란 무엇인가?
미즈노 마나부 지음, 박수현 옮김 / 하루(haru)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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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니 뻔한 이야기. 국내에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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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히키코모리, 얼떨결에 10년 - 만렙 집돌이의 방구석 탈출기
김재주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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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고 싶지 않을 민 낯을 천하에 드러낸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 웃픈 공감과 위로를 얻었으나. 너무도 솔직한 그 고백에 일부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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