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지움 남학생인 사샤는 미소년으로, 류드밀라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숙녀이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류드밀라는 종종 사샤를 아름답게 꾸며준다. 책 후반부에 류드밀라는 사샤를 게이샤로 분장시켜 무도회장에 보낸다. 여기서 사샤는 가장 인기있는 여성으로 뽑히는데, 광기에 휩싸인 군중이 사샤의 옷을 찢으려고 한다. 유일하게 사샤를 도와주는 인물 또한 남자 배우이다. 사샤-류드밀라-남자배우가 비정상적인 작품의 분위기와 대비되며 '미의식을 가진 인물이 집단적 광기에 휩쓸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아름다움이 사람을 타락하지 않게 돕는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예술작품은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인간사회를 끌고와 변형한 것들이다. 그 속에서 반짝이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그 특별한 감정을 확장할 수 있으리라. 즉 궁극적인 미의식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쟁과 현대의 삭막함을 극복하고 인간의 가치를 되찾게 도와준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나와 다른 세상을 관찰하고 이를 내 세계로 확장하여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가 책의 감상 포인트를 잘 잡지 못했는데도 술술 읽은 걸 보면 책 자체의 매력은 충분한 것 같다. 이 번역본에서는 역자가 슬로구프와의 인터뷰 형식을 빌어 작품을 해제하기도 한다. 슬로구프의 불우했던 어린시절과 성장기, 러시아의 상징주의 사조, 작품의 분위기 등.... 꼼꼼하게 읽었지만 내가 러시아 상징주의와 근현대사에 조예가 없어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또 이 작품에 예수와 관련한 기독교적 상징이 많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해설을 읽어도 내가 종교적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중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배경지식이 깊지 않아 디테일한 부분을 놓친 것 같아 아쉬웠던 책이다. 러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