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이랑 지음 / 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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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우연히 이랑의 노래를 들었다. ‘너의 리듬’이라는 제목의 곡은 난 왜 이리 무던하지 못한가 고민하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이 후 들은 이랑의 노래 속 가사들은 종종 나의 이야기인가 싶어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때문에 근 몇년 간 잊혀질만 하면 이랑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들으며 위로받곤 했다.
이 책은 몇 주 전 좋아하는 책방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한 동안 이런 개인 에세이는 잘 읽지 않았는데 그 이랑이 쓴 책이라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남다르면서도 평범한 그녀의 이야기는 공감 되면서도 새로운 묘한 매력이 있었다. 창작과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이 나와는 정말 다른 내 친구를 떠올리게 하다가도, 가족과 작업에서의 뿌듯함을 이야기할 때는 내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이런 다채로운 면을 가진 사람이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 것 아닐까.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라고.

*인상깊은 구절
18p.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면서 흘린 말들을 주워 담고, 더 줍기 위해 뒤를 쫓아다닌다. 오늘 수집한 것은 정형외과 물리치료사들의 대화이다. (평소 글쓰기 시간에 아주 유용할 것 같은 방법이다. 글쓰기 주제는.. ‘오늘 하루 중 가장 재밌었던 타인의 대화 훔치기’?)

27p. 그래, 뒤에서 박수 치라고 여덟 명이나 세워둔 게 낭비라면 낭비지. 드럼 한 대만 갖다놔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근데 저 사람들 재밌어 보이지 않아? 낭비는 재밌는 거야. 나는 낭비하려고 사는데, 낭비 없으면 너희들 가르치고 일만 하고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고 다시 일하고 그렇게 살라고? (내 이야기인가 싶었던 부분. 일에만 매달렸던 지난 몇 년은 너무나 괴로웠다. 그러나 일하면서 책 읽고, 여행다니고, 사랑을 하는 등, 열심히 낭비하는 지금은 확실히 행복해졌고, 행복한 나는 일에도 더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삶에서 ‘낭비’는 정말 필요하다.)

31p. 마음껏 울 기회가 없어, 모두의 눈을 피해 쓰러진 봉숭아 줄기를 세워주는 척 화단에 앉아 울었다고 써 왔다.

53p. 내 이론상 모든 사람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나는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사람을 사귀는 재미난 이유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질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나는 평생 나를 보고 겪고 또 보고 겪어도 신기한데 어떻게 모르는 게 더 많은 남에게 질릴 수 있을까? 내일이 다르고 몇년 후기 다를 우리는 왜 재미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까?

54p.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유대 관계인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회의적이었다.

71p. 왜 만드나.
만들고 나면 느껴지는 기분이 너무 좋다. 이건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좀 그런데, 아마 ‘뿌듯하다’라는 말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헌데 그 기분은 오래가지는 않는다. 노래를 백 번 이백 번 정도 들으며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원래 아무것도 안 만들어본 상태로 돌아간다. 평소 내가 느끼는 나의 상태. ‘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지?’하며 스스로를 바보같이 여기는 상태. 만드는 과정에서도 힘든 부분이 많았을 텐데 그건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매일 매 시간 새로운 수업을 만들 때 느끼곤 하는 기분이다. 나는 분명 매일 매 시간 수업을 좀 더 재밌게, 다르게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자료를 완성하고, 수업을 잘 끝내고 나면 그 뿌듯한 기분은 하루면 사라지고 만다. 나는 작가처럼 그 수업을 백 번, 이백 번 볼 수는 없으니 더 빨리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또 고민한다. ‘나는 대체 뭐하고 사는 거지?’... 차라리 어쩌다 가끔 열심히 만들면 이 뿌듯함이 오래 갈까? 다음 ‘만들기’로 고민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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