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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속의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와 함께 떠나는 자아 탐험 여행
마티아스 융 지음, 홍순철 옮김 / 해바라기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너에게 장미꽃이 소중한 것은 네가 그것을 위해 허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란다.' 누군들 어린 왕자의 이 감동적인 구절들을 되뇌어보지 않았을까요? 어린 왕자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합니다. 1위는 성서, 2위는 운전 면허 문제집이었다나요? 그러나 이런 인기 속에 읽히는 어린 왕자가 말하고자 했던 참 뜻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우정과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언사들 뒤에 숨어 있는 생텍쥐페리의 치열한 삶과, 별들에서 만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안다면, 우리는 먼지에 쌓여있는 '어린 왕자'를 다시 꺼내어 밤을 하얗게 새우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티아스 융은 심리학자로서, '어린 왕자'를 생텍쥐페리의 삶과 연결시켜 그 감추어진 의미를(생텍쥐페리는 감추려 하지 않았지만)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C.G.융의 심리학적 전통 위에 서 있습니다만 우려와는 달리 심리학적 결과물에 천착하지 않고, 생텍쥐페리가 의도하는 바를 생명력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원작의 삽화에서 어린 왕자가 칼을 차고 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조국을 위해 참전했던 생텍쥐페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결국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역시 자신 안에 어린 왕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망각 속에 방치되어 왔던 우리의 유년시절, 심리학적으로 보면 지금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내면의 어린 아이'로서의 또 다른 내가 바로 어린 왕자입니다.

마티아스 융은 소설 속에서 조종사가 겪은 두려움, 위기가 우리 역시 삶에서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밝히며 실마리를 풀어 나갑니다. '위기에 맞닥뜨린 그 순간은 마치 세계 최초로 연주하게 된 공연 무대와 같아서 당신을 제외한 세상 어느 누구도 그 순간을 경험할 수 없다.' 이어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는 순간은 한 개인이 자기 내면의 아이를 찾아내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사막 한가운데 추락한 자신의 또 다른 나, 즉 그의 '옛 자아'를 만난 것입니다. 이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나고 가까이 하는 순간, 어느 스승이나 가르침에게서보다 훨씬 귀한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소혹성들에서 만나는 권력지향형의 인간, 허영심에 찬 사람, 중독자, 소유에 집착하는 인간, 일에 중독된 소시민, 실천 없는 지식인, 목적없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가 실은 자기 내면의 일부분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일단 그것을 깨닫고 나면 스스로 변화의 과정을 밟습니다. 여우와 장미의 등장으로 정점에 치닫는 '어린 왕자'는 그의 죽음과 함께 생텍쥐페리 자신의 죽음이 예감되는 가운데 끝이 나지만, 나의 내면의 어린 왕자는 항상 나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티아스 융은 어린 왕자와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이 독자 자신의 중대한 내면적 상태를 표상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고전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심리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몇 해 전 T.V. 에서 생텍쥐페리의 생애가 다루어졌습니다. 그는 40세 이상 비행금지라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장군을 찾아가 5회 출격의 약속 하에 비행대로 복귀합니다. 그러나 1944년 7월 31일 9번째 출격을 감행하였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꼬르시카와 대륙간 해상에서 독일 정찰기에게 격추되었으리라고 추측되는 비행기 잔해가, 글과 삶이 너무도 일치했던 그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양되고 있음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비행대 복귀를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참여한다는 것이고 분담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조국 프랑스는 나에게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하여 생텍쥐페리를 사랑하게 될 뿐 아니라, 어린 왕자에 대한 옛 애정을 기억하고, 또한 자기 내면에 아직도 존재하는 어린 왕자를 만나기 위해 길 떠날 채비를 차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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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엔조 비앙키 지음, 이연학 옮김 / 분도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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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교 신자, 비신자를 불문하고 대단히 높습니다. 그러나 성서를 읽고 새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자는 많지 않은데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소장하고 읽고, 성서에 관한 책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서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수준있는 교양서적으로, 때론 문학작품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참되게 대하는 길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 그리고 신자가 아니라면 비록 '무엇이 이 책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나'하는 호기심의 차원에서 출발하더라도 다른 종교의 신앙의 정수를 찾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씌어졌고, 또 신자들이 읽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개신교는 출발부터 성서를 매우 중시하였기 때문에 성서를 읽고 대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특별히 16세기 종교 분열의 시기를 거치면서 성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음이 사실입니다. 가톨릭 수도자인 저자 엔조 비앙키는 성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오래된 관심을 상기시키며 출발합니다. Lectio Divina(거룩한 독서)라는 방법은 초세기 교부인 오리게네스부터 이미 시작되어 가톨릭의 전통 안에서 면면이 맥을 이어왔음을 주지시킵니다. 아니, 복음사가들 역시 이 '거룩한 독서'의 흐름 위에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성령의 인도 안에서 복음서를 집필하였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올바로 성서를 대하기 위해서는 성서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와, 학문적 사변의 대상으로만 고찰하는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기도하고 본문을 세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조(觀照)하는 단계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독서'는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그리스도교 최고의 성서 묵상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과정의 묵상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는 독서가 약간씩 정통적인 방법에서 어긋나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일체의 허식을 배제한 채 각 단계의 정수만을 역사와 전통의 기초 위에서 제시하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정말로 성서를 '하느님 말씀'으로, 말씀 안에서 새롭게 육화하시는 하느님으로 알아 뵙게 됩니다.

저자의 은은하고 향기롭고, 정통적인 이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뒷받침해주는 역자의 맑은 번역은 책의 품위를 더하여 줍니다. 두 분 다 한번 만나뵙고 싶은 열망에 가득차게 만드는 책입니다. 성서에 대한 묵상서적을 여러 권 읽어 보았지만, 단언하건데, 지금까지의 서적 중 '말씀으로부터 샘솟는 기도' 보다 더 좋은 책이 있다면, 그것은 성서 자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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