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엔조 비앙키 지음, 이연학 옮김 / 분도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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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서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교 신자, 비신자를 불문하고 대단히 높습니다. 그러나 성서를 읽고 새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자는 많지 않은데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소장하고 읽고, 성서에 관한 책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서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수준있는 교양서적으로, 때론 문학작품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참되게 대하는 길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 그리고 신자가 아니라면 비록 '무엇이 이 책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나'하는 호기심의 차원에서 출발하더라도 다른 종교의 신앙의 정수를 찾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씌어졌고, 또 신자들이 읽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개신교는 출발부터 성서를 매우 중시하였기 때문에 성서를 읽고 대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특별히 16세기 종교 분열의 시기를 거치면서 성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음이 사실입니다. 가톨릭 수도자인 저자 엔조 비앙키는 성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오래된 관심을 상기시키며 출발합니다. Lectio Divina(거룩한 독서)라는 방법은 초세기 교부인 오리게네스부터 이미 시작되어 가톨릭의 전통 안에서 면면이 맥을 이어왔음을 주지시킵니다. 아니, 복음사가들 역시 이 '거룩한 독서'의 흐름 위에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성령의 인도 안에서 복음서를 집필하였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올바로 성서를 대하기 위해서는 성서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와, 학문적 사변의 대상으로만 고찰하는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기도하고 본문을 세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조(觀照)하는 단계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독서'는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그리스도교 최고의 성서 묵상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과정의 묵상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는 독서가 약간씩 정통적인 방법에서 어긋나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일체의 허식을 배제한 채 각 단계의 정수만을 역사와 전통의 기초 위에서 제시하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정말로 성서를 '하느님 말씀'으로, 말씀 안에서 새롭게 육화하시는 하느님으로 알아 뵙게 됩니다.

저자의 은은하고 향기롭고, 정통적인 이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뒷받침해주는 역자의 맑은 번역은 책의 품위를 더하여 줍니다. 두 분 다 한번 만나뵙고 싶은 열망에 가득차게 만드는 책입니다. 성서에 대한 묵상서적을 여러 권 읽어 보았지만, 단언하건데, 지금까지의 서적 중 '말씀으로부터 샘솟는 기도' 보다 더 좋은 책이 있다면, 그것은 성서 자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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