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간 책이었다. 도무지 중간에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흡입력있다. 유년기의 첫번째 수기와 서문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처음 서술하는 부분이나 나와 남이 다름에서 오는 감각을 기민하게 받아들이고 설명하는 부분이 공감된다. 이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수기에서 이어지는 기민한 성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몰락하는 삶을 타인처럼 객관화하는 부분이나 중심 없이 흘러가는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지 서술하는 부분이 뼈에 사무치듯 아팠다. 그건 이토록 매력있는 문장을 가진 작가의 삶도 이 수기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거다. 많은 생각을 남기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우린 모두 나약하지만 그토록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까.
시종일관 서늘하다. 필립로스의 글은 항상 읽는 사람을 서늘하게 만든다. 1인칭 시잠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 늘상 느껴진다. 그 온도로 노년과 죽음을 이야기 했으니 이 이야기가 내게 어떤 온도로 기억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다. 늙음이란, 노년이란 말을 떠올리면 오래된 다락방에 쏟아지는 햇살이나 늘어지게 자는 늦잠 같은 것을 막연하게 떠올리곤 했는데 이 글을 읽고 갑자기 현실로 뚝 떨어진 느낌이다. 나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노년에는 흔들리지 않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한 우리는 언제나 흔들릴 수 있고 불안할 수 있을테다. 안정적인 나이란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나이듦의 무서움. 그걸 이제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똑바로 살아야 할지도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