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도 괜찮아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전하는 '우울 졸업'과 행복한 은둔 생활
가토 다카히로 지음, 최태영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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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는 ‘도망’이라는 단어 앞에서 너무 쉽게 판단한다. 나약하다, 비겁하다, 무책임하다… 사회는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요한다. 『도망쳐도 괜찮아』는 이 굳어진 사고를 전면에서 부정한다. 오히려 도망을 하나의 전략, 회복의 기회, 그리고 마음의 자율권으로 바라본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버티기'에 중독된 구조인지 먼저 짚는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는 “좀 더 노력해봐” 혹은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한다. 마음의 병은 곧 나의 실패처럼 여겨지고, 그런 인식은 병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로 지칭되는 이들의 삶은 더더욱 이해받기 힘들다. 그들의 방은 단순한 회피의 공간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책에서는 우울증의 두 가지 유형을 대조하며 주목한다. ‘멜랑콜리형 우울증’이 전통적 사회 규범을 내면화한 사람들의 자기비난적 성향에서 비롯된다면, ‘신세대 우울증’은 회피적 성향과 외부 탓의 경향을 보인다. 전자는 도망을 죄책감으로 여기고, 후자는 도망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두 유형 모두 ‘도망’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처받고 있다는 점에서, 도망은 단순한 행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내면의 갈등과 맞닿아 있는 깊은 심리의 표현이다.

『도망쳐도 괜찮아』는 ‘도망’의 개념을 단계적으로 풀어낸다. 도망의 준비기 – 실행기 – 이후의 회복기를 구조화하여, 무작정 회피하는 것이 아닌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이탈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또한 도망을 막기보다, 어떻게 도망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소소한 일탈인 ‘프티 도망’의 경험이 큰 탈출을 위한 심리적 근육이 되며, 이러한 경험이 누적될수록 사람은 오히려 강해진다는 역설적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은-둔-형-외-톨’ 5단계 접근법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선 실천적 제안이다.
1. 은:근히 다가가기
2. 둔:감하지 않게 살피기
3. 형:식보다 진심으로 대하기
4. 외:로움에 함께 있기
5. 톨:통로를 열어주는 존재 되기
이는 힐링이 아닌, 존재의 회복을 위한 감정적 루트맵이며, 가족이나 교사, 사회 구성원들이 은둔자들과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지를 친절히 안내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지금의 머무는 곳이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다. 사람은 공간 없이 쉴 수 없다. 물리적 공간이든 심리적 공간이든, 안전한 곳이 있어야 다시 세상으로 나올 힘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도망은 새로운 힘을 축적하는 쉼의 기술이다.

『도망쳐도 괜찮아』는 단지 도피를 옹호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도망쳐야 하며, 어떻게 도망친 후 회복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책이다. ‘도망가면 지는 거야’라는 말에 묶여 괴로워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도망칠 자격이 있다. 도망치는 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용기다.”
지금 도망치고 싶은가? 괜찮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으로 가는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잘 도망치는 법을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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