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뷔의 순간 - 영화감독 17인이 들려주는 나의 청춘 분투기
한국영화감독조합 지음, 주성철 엮음 / 푸른숲 / 2014년 11월
평점 :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있다고 한다.
어떤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또 어떤사람은 고요한 청춘을 보내다 늦바람이 나기도 한지만
어쨌든간에 죽기전에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수년 전 어쩌면 내 기억에도 흐릿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어느 과거의 시점부터
토요일마다 사자가 울부짖는 MGM 영화사의 오프닝을 보며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해가며 토요명화를 시청해왔다.
그러면서도 영화감독이라는것이 대체 뭐하는건지 알지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구체적으로 영화가 무엇인지 영화를 만드는것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것같다.
당시.. 지금처럼 극장에 자리예매하는 시스템이 차마 없었을 시절에 갓 두시간되어가는 영화를 서서 보면서도
그 영화관의 어두컴컴함. 그리고 그 스토리에 푹빠져 헤어나오지 못해 다리가 아프기는 커녕
영화가 끝나고도 흥분이 가시질 않아 자면서도
당일 본 영화에 대한 꿈을 꾸고싶다는 생각.
이왕이면 내꿈이니 내가 원하는 방향의 스토리로 꿈을 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발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에서야 생각이 드는거지만.. 미취학 꼬맹이를 데리고 왜 그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보러갔는지 이해가 잘 안되지만..
덕분에 지금 나의 취향은 애엄마라고는 하기에 참 난감하게도 피튀기고 사지절단 공포영화를 즐겨보기도 한다. 흠..
어쨌든.. 이렇게 영화를 자의반 타의반 즐겨보던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삼년내내 장래희망을 영화감독이라고 써내고
또 우연스러운 기회에 유학을 다녀와 뒤늦게나마 영화감독이라는것을 해보겠다고 불현듯 영화과로 편입한 사건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였지만.. 우리 부모님께는 유년시절에 미처 다 쓰지 못한 지랄이 발현된 것처럼 비추어졌다고 말씀하신다. ㅎㅎ
영화과로 편입하여 영화를 실제로 만들어본 결과,,,,정말 학생영화라 단 10분채 되지도 못한 분량을 만드는데도
그 안에서 감독이란 나를 바라보는 수십명의 시선.. 나만 바라보는 그 시선.. 을 도저히 감당치 못하겠는데
그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 쳐도.. 계속 무언가 창작이라는걸 하고 있자니..
진짜 내 자신이 드러난다는 부담감..
정말 나는 내면이 부족한사람인데다가 참으로 깊이도 없는 사람인데.. 그걸 계속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이니..내가 만든 영화를 다시말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의 부족한 내면을 계속 평가받는다는것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반 회사에 취직하고.. 흘러흘러 영화만드는건.. 아마 나와 맞지 않나봐..하고 지내오고있다가
발견한 <데뷔의 순간>..
정말 궁금했다.. 내가 참을수 없어 도망쳐온 그 곳에서 십수년을 몸담고 끝까지 버텨온 한국의 손꼽는 영화감독들의 이야기..
대체 무슨 비법이 있기에.. 그들은 끝까지 벼텨.. 감독이란 직업<?> 소명<?>을 지켜낼수 있었을까...
17명의 감독들의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느낀바로는
감독 모두..고백하기를.. 영화를 끝까지 할수 있었던 묘안.. 노하우 같은건 없었다..
다만.. 영화밖에 할게 없었다는.. 영화 외에는 다른길이 아예 없었다.. 그리하여 영화외 다른걸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길이 내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수 있었던 힘은..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것.. 이..이들을 끝까지 버티게 하고.. 그리하여 한국에 손꼽히는 감독들의 반열에 오르게 한것이 아닐까..
어찌하면.. 아프니 청춘이다 라는 류의 담론이 여기저기 넘쳐나는 이 시대에.. 17명의 감독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읽고나니.. 힐링이라는.. 말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버텨!! 그리고 버티다 보면 무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같은게 생기기도 했다.
역시.. 모든지 정면돌파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것은 힐링이 필요한게 아니다.. 인정하고 버텨보자..라는 ..
<데뷔의 순간> 이책은 감독이건.. 작가건..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 내게.. 간만에 파이팅이 넘치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