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 지금 우리에게 정의, 쿨함, 선악, 양심,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비에저 터커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이럴때 소크라테스라면>, 이 책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주인공 삼아 쓴 대화편 5가지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고전이란 모두가 칭찬은 하되 아무도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마크트웨인의 신랄한 격언을 발견하고 맞다 맞어 라며 고개를 매우 힘차게 끄덕이며 메모해놓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살짝 부끄러워지는 것도 잠깐, 고전읽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고전 그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알면서도 그 고전 원본자체를 읽는다는것은 사실 매우 고역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고전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생각하던 차에 <이럴땐 소크라테스처처럼> 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감히 스스로 정의내리기에 어렵지만 꼭 읽어야 하는 고전보다는 약간 미흡하긴 해도 그 내용이 크게 가감되어 원본을 왜곡하지 않은 정도이기에 철학 입문자에게 매우 안성맞춤인 책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을 직접 읽지는 않았음에도 마치 이미 읽은것같은 착각을 하고 사는 편이였다. 왜냐하면 줄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하고 진부해진 것들이 많고 또한 인터넷상에 떠도는 어중이 떠중이들의 정보들에 의해 일치감치 편견에 휩싸인 스포일러들을 너무 쉽게 접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뭐..이 책만 읽고 플라톤을 읽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겠지만 고전에 현대적인 각색을 입혀 최대한 원작이 가는길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것은 확실하다.
이책을 읽으며 나는 잊고 있었던 지난날 나의 청춘시절에 곧잘 내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들을 기억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어째서 나의 인식은 제한되어 있을까?
또 왜 나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을까?
나는 왜 이곳에서 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이시점에서 그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는 것인가?
다른 것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된것은 무슨 이유일까?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가 될것이라는 예측을 들었을때 어떤사람들은 기회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회로생각하였고 어떤사람들은 미친놈 정신나간소리라 생각할때 그 두사람의 생각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이러다가 나는 어쩌면 꽤 오랜시간 스스로 물어왔지만 아직도 알고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질문 자체가 갑자기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모르지만 알고있는 척 하고 살아가는 자체가 훨씬 쉬운것 같아.. 그냥 아는척 살아왔음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이 정신없다는 이유만으로 철학적 논의와 숙고가 피곤하다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마치 행동패턴의 자동적인 반복에 불과한 로봇이나 더 나아가 좀비와 무엇이 차별점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현대적으로 각색된 이 책의 소크라테스는 마치 4살짜리 아들래미가 나의 어떤 행동이나 언행에 질문의 꼬리를 무는 모습과 비슷하게도 느껴졌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4살짜리 꼬마처럼 어수룩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나의 답변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나는 결국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더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
어쩌면 이책의 지향점.. 혹은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지향점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삶자체가 피로하다고 미생에 불과하다고 투덜거리며 좀비로 사는 인생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말해 겉모습이나 돈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일시적이고 얄팍한 것들에 더 관심을 쏟지 않으며 제한적 지혜를 가진 것 뿐이면서도 정작 자기가 더 수준 높고 폭넓은 문제에 대해서도 지혜롭다고 착각하지 말것이라는 것이 다소 추상적이고 난해한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해야할 목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했던 요즘 잊고있었던 혹은 잊고 싶었던 사유목록을 다시 상기시키는 아주 고무적인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