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책 54 -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서 에크하르트 톨레까지 내면의 성장을 위한 영성 고전 읽기
제임스 M. 러셀 지음, 이정아 옮김 / 판미동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책표지부터 마음에 드는 아주 좋은 책이 도착했다. :)

​책을 펼쳐 중반 부분까지 읽어나갈 때에는 단순히 기독교인 저자가 쓴 훌륭한 기독교 영성 역사 개관서라고 생각했다. 허나 책을 모두 읽고 덮은 뒤에 왜 책 제목을 '영성의 책'이 아닌 '영혼의 책'이라고 적었는지 깨닫게 됐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영성가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배경과 관계가 없지만 존경할 만한 '영혼'의 삶을 보여준 저자들의 저서들까지 모두 소개했다. 자그마치 54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성의 방식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착각인듯하다. 이건 뭐 비종교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비종교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주장할 뿐이지 자신의 삶의 행태를 진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명령해주셔서 살아가는 당위적인 방식이라고 믿고 살아가기에 영성의 다른 결을 보이는 타인들을 포용하고 용납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교회와 개혁주의적 교회가 아름답게 협력하고 사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교회는 개혁주의적 교회가 뜨거운 열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개혁주의적 교회는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교회를 보며 신비주의적, 주관적이고 위험한 영성을 추구한다고 바라보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이런 차원에서 이 처럼 다양한 영성의 결을 소개하는 것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의 방식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영성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될 듯 하다. 어떤 신학자가 말하듯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포용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 실질적인 지식을 준다.

'영혼의 책 54'는 간단히 말하면 54권의 영성 서평집이다. 각 책 마다 3~4페이지의 분량으로 이뤄져 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 저자의 삶의 배경과 책을 쓰게 된 계기,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까지 소개한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3번이나 읽었는데 그 책을 쓰는 CS루이스의 고충은 처음 알게 됐다.

저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는 비평도 포함돼있다. 일례로 책에 체스터턴의 「정통」​을 기술하는 부분에선 이 책의 우수성을 옹호할 뿐 아니라 체스터턴의 극단적 주관을 강하게 깐다. 어느정도의 객관성은 담보돼있다.

또한 책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떤 책은 소개하다가 더 소개 하고 싶지만 스포가 될 까봐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ㅋㅋㅋ) 친근함까지 어필했다.

​우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체험하​기를 갈망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의 글들을 읽을 때는 정말 영혼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이름만 들었을 법한 초기 그리스도교 고전​들을 읽으면서 '영성'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데 이 만한 지침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사, 역사의 역사, 신학의 역사, ​그리스도교의 역사, 교리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있지만 영성의 역사를 다룬 책은 없지 않은가.

요즘은 누가 사막 교부 영성가의 책을 읽는가. 솔직히. ​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성경 지식을 알고 삶의 적용점만을 찾아내는 단순한 종교행위에 만족하는가.

영성 고전을 읽으며 영혼을​ 시원케하고 싶다는 갈망이 찾아왔다.

​일부 교단에서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관상기도'에 대한 주의를 표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나친 주관으로 빠질 우려는 있지만 '관상기도' 자체가 주는 영혼의 유익을 안다면. 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같다.

​교리수호를 하려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소위 '위험한' 서적이라 불릴 법한 서적들도 많이 다뤘는데. 분별력을 갖춘 건강한 신앙을 지닌 독자들에겐 무리없이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한 자연스러운 풍성함을 뺏기지말자. ㅎㅎ

이 책을 읽으며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영성을 단순히 성경에 국한 시켜, 문자적으로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가끔 인문학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건져낸 깨달음이 내게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성경적이지 않은 방식을 삶에 적용한다는 이상한 정죄감에 사로잡히곤했었다. 또한 싯다르타, 도덕경,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등의 책은 책 이름부터 무언가 나를 초조하게 만들곤 했다. 이제부턴 저자가 일러주는 지침을 따라 분별력을 가지고 읽어내며 지혜의 차원에서 적용하면 될 듯 하다.

또한 단순히 우리의 영성을 내적인 영역을 너머 더 폭 넓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진리안에서 각 사람에게 빚어지는 영성은 어쩔 수 없이 ​상황적이고, 환경적이고, 인격적이다.

일상의 태도, 이웃들과의 관계, ​자신의 삶을 너머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력, 사회운동가의 활동, 끔찍한 강제수용소 속에서의 극한의 인내. 이 모든 차원에서 영혼은 발버둥치며 각자의 상태에서 삶의 질적 도약을 이뤄낸다.

우리에겐 영성이라는 주제가 정말 소중하다. 뉴스를 보면 정신적인 병에 시달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마약에 중독된 연예인들 등 경악할 만한 뉴스가 우리를 늘 기다리고있다. 화제는 안 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영성 고전을 읽으며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도약을 이뤄낸 위대한 영혼들을 마주할 수 있다.

어느 때라고 안그랬지마는 지금은 더욱 이런 위대한 영혼들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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