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생글보미 >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세계문학총서 6
밀란 쿤데라 지음, 김규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그녀는 자기가 참을성이 없었다는 점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속에 녹아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2006. 07. 05. WED. PM 10:23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둘의 작품은 느낌이 닮아 있었다.

          뱅뱅 돌려 말해 나를 정신없게 만들면서도

          날카롭고 예리한 지적으로 공감하게 하는 그들의 센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 방면으로 접근하고 관찰해서 꼬집어 냄으로써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내면의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게 한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다.

          보통씨의 작품보다 더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잖아.ㅠㅠ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뱉어내야

          비로소 이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읽는 시간도 다른 책보다 배로 걸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정말 훌륭한 이야기만은 틀림없다.

          '사랑'이라는 주제에만 좁혀있지 않고 정치, 예술, 종교,

          체코의 점령당했던 당시의 상황 등등 여러 면에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하는 귀한 작품이었다.

          비록, 마지막장을 넘기는 순간 실망감에 땅을 쳤지만.

          내용의 부실함에 실망한 게 아니라

          내가 그토록 찾았던 구절이 이 책에는 없었던 것이다!!!

          난 오로지 이 구절에 감동해서 표지가 맘에 안들고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손을 들었건만.

          만인의 연인 '지식 인!!'에 찾아보니 해석상의 문제로

          책의 내용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하다. 어안이 벙벙.

          그 구절을 소개하자면?

          바로 이런 것.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 이불을 걷어차는 습성

이가는 소리, 단내 나는 입 등등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 외에도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화장 안한 맨 얼굴을 예쁘게 볼 수 있다는 뜻이며
  로션 안 바른 얼굴을 멋있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팔 베개에 묻혀 눈을 떴을 때
  아침에 당신의 모습은 볼만하리라
  눈꼽은 끼고,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침흘린 자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는 단내가 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단내 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꼽을 손으로 떼어 주며
  떠 있는 까치집 머리를 손으로 빗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그와 또는 그녀와 잔다
  처음에 당신은 그의 팔베개 안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겠지만
  한참 깊은 잠 중에서는

당신들은 등을 돌리고 잘 지도 모른다
 

 

 왜냐면

깊은 잠 속에서 당신의 잠버릇은

여지없이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갈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자기도 하며

배를 벅벅 긁거나

잠꼬대를 한다거나

잠결에 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잔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단내 나는 입으로 키스를 할 수 있으며

옷을 충분히 입지 않았다면 바로 섹스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
  섹스만을 하기 위한 잠자리에서와는 다르게

별도의 복잡한 절차와 교태와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런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매일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매일 같이 섹스를 하는 사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애인과 섹스를 할 때에는
  우리는 일단 그와, 그녀와 어떤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아니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라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하튼 잘 만한 사람이며 좋은 사이라는 것이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진다
  

 

몇 시에 호텔에 들어가서 몇 시에 나선다는
  그런 합의가 있으며
  그 곳에 가기 전에

상대방의 귀를 만진다든지,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하고 싶어, 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서로의 확실히 약속된 언어적, 비언어적 합의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가면 남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고
  여자는 텔레비젼을 켜며 콘돔을 준비하라고 말을 한다
  둘은 습관에 따라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그냥 침대에서 일부터 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한바탕의 폭풍이 지나가면

잠시 누워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여자는 눈썹이 지워지지 않았나 화장을 고칠 것이며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만족시켰나 다시 되씹어 볼 것이다

  

그런 후 다시 한 번의 폭풍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정력이 형편없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후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씻고

그 곳에 발을 디딜 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여자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며
  남자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을 것이다

  

그러면 섹스 뒤의 느낌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최면에 걸렸다면, 좋을 것이고
  여자가 집에 늦었다면 여자는 불안할 것이며
  새벽녘이라면 남자는 더 머무르고 싶을 것이다
  가임기간 중이라면 둘 중의 하나는 불안할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쁠 지도 모른다
  불행하다면 둘 다 불안할 것이겠지만

 

 그들은, 항상 꾸민 모습으로 만나며
  눈꼽 낀 얼굴을 볼 수 없으며

단내 나는 입술에 키스를 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화장 안한 얼굴이

얼마나 큰 상상력을 요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씻기 싫어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항상...잘 차려진 모습으로 만나
  섹스는 그들만의 합의된 축제가 된다

 

그러므로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단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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