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연구의 기초 - 개념어 10 + 텍스트 10
최범 지음, 박민수 디자인 / 안그라픽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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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비평을 읽을 때면 늘 가슴과 머리가 벅차오른다. 폭넓으면서도 탄탄한 이론적 배경으로 무장한 최범 평론가의 글은 늘 지적 자극을 준다.


이번 텍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사회적 생산’ 개념이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만의 작품이 결코 아니다. 최범 평론가는 “현대적인 생산 시스템 속에서 디자이너는 디자인 제안자이지 디자인 결정가 아니”라고 말한다. 디자인에 있어 주요 행위 주체는 디자이너, 경영자, 대중이며 이들에 따라 디자인이 구현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제안하면, 경영자가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경영자의 결정에 의해 시장에 나온 디자인은 다시 대중의 선택을 받는다. 이와 같다면 “디자인 생산을 디자이너 중심으로 협소하게 인식하는 것을 벗어나야 한다. ‘사회적 생산’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디자인은 누구나 개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결과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흔히 야구에서 응원하는 팀이 지면 감독을 탓하곤 하는데, 정말 감독의 탓일까. 어떤 디자인 결과물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오로지 디자이너의 탓일까. 경영자의 개입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제안이 크게 바뀌었다면? 물론 경영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득도 중요한 과정이지만, 저자가 지적하듯 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은 한계가 있어보인다. 디자이너와 경영자가 고심해서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대중의 선택을 못받는다면? 대중의 공감을 고려하지 못한 디자이너와 경영자의 잘못일까. ‘지적 자본’과 안목, 포용력이 부족한 대중의 잘못일까.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저자의 말처럼, 디자인 생산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결코 독점적 주체가 아니지만, 이 말은 거꾸로 “디자이너가 디자인 제안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설 때 오히려 자신의 디자인 제안을 훨씬 더 잘 관철시킬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을 제안하는 역할은 어떨까. 헤어 드라이어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면, 헤어 드라이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젖은 머리? 기존의 헤어 드라이어는 젖은 머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효율적으로 말리는 방법’을 제안해왔는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장성 디자이너의 말처럼 ESG측면에서 젖은 머리가 바람직하면서도 매우 패셔너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사회운동을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에서 최범 평론가는 “디자인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사회적 생산’이라는 개념을 접한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정말 디자이너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먼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자본과 안목, 포용력을 갖춘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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