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정두희.이경순 엮음,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 기획 / 휴머니스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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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국사시간에는 초,중,고등학교 예외없이 선생님들은 임진왜란이 우리 즉 조선이 승리한 전쟁임을 강조하였다.그런데 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을 갔고, 조선 땅에서 일본군을 몰아 낸 것뿐인데 승리한 전쟁이라고 할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또한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필수적으로 현충사를 가야만 했고,고등학교 때는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충무교육원이라는 곳에 며칠 동안 들어가 국민의 덕목이라는 것을 배운 기억이 난다.거기에다 칠백의총까지 행군하여 사당에서 분향하는 것이 전학년에 걸쳐서 한번은 꼭 가야할 소풍 코스였다.이렇듯 임진왜란의 기억이 우리 일상에서 국민이 가져야하는 애국심을 강화하는 교육 교재로 쓰인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는 이전의 의문과 더불어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그 당시 조선과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같길내 조선과 현재의 우리를 동일시 하는가?'또한`그 당시 가부장적인 봉건 질서 속에 논개에게 조선 장수와 일본 장수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이런 의문은 가시지 않은 채로 바쁜 일상 속에서 곧 잊혀지고 있었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나서 전에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내가 바라던 책이 나온 것에 대한 기쁨으로 지루한 줄 몰랐다.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임진왜란이 후대에 어떻게 기억되고 해석되는 지에 대한 것이다.  

  논개로 대표되는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은 기생이라는 소설 소재를 통하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활용해 남성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며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사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박종화를 역사 소설의 대가로 치켜세우고 그의 소설을 추천해서 그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당시 언론매체들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고 그 영향으로 나는 그를 매우 훌륭한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나중에 그 허구성을 알게 되었지만 그의 소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인적이 있었다.어떻게 보면 기생이라는 하위 계층의 여성을 통해 신분이 다른 여성과 분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 전체를 주체적인 인격체로가 아니라 남성이 주도하는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국가에 대한 여성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이러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여성의 가혹한 희생 뒤에 비로소 여성은 국민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심지어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까지도 미군이나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진정한 애국자라는 말까지 했었다.그 잘난 남자들이 나라를 망하게 해놓고 그 결과는 조선에서도 피억압자인 여성이조선과 일본이라는 국가와 남성에 의해 이중의 억압을 경험해야 했던 가장 큰 희생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논개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중요시하고 오직 논개를 `忠'의 화신으로 만들어 그러한 상상이 확고한 사실로 변하며 만들어진 기억이 획일적으로 주입되고 있다. 

  또한 조선이 국가의 한 국가의 체면때문에 특전을 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피로인 쇄환에 집착하면서도 막상 특전을 부여받은 자는 자력으로 귀환한 경우에 한정되었다.지금까지도 역사의 희생자이면서 국가에 의해 버림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화왕산성의 기억에서는 화왕산성 수비는 적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가 없어 적의 진로를 막거나 타격을 가하는 등의 접전이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 남인들이 노론에 맞설 수 있는 명분을 쌓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에 의해 <동고록>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는 등 실제와 거리가 먼 설명을 하였다.또한 <동고록>을 기초로 한 실기가 사실기록의 근거가 되어,문중들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결국 화왕산성 수비라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와 다르게 인식되어 그 인식이 역사적 진실로 기억되고 있다.지금도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도 그 존재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사실이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전달되었는 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이순신을 기억하는 관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인식해야지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과 나타난 인물에 의해 역사화하려 해서는 안된다.이순신을 우리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도피처로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을 더 깊이 역사적으로 성찰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재생시켜야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전쟁의 당사국들은 7년 동안의 전쟁의 참상은 뒤로 한채, 오로지 자신들이 승리자이고 그 승리가 빛나는 영광임을 서술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서술은 전쟁의 교훈을 평화의 가치가 소중함을 깨닫고 평화를 추구하는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투쟁 속에서 적에 대한 승리와 정복에서 찾는다.또한 그 배타성으로 인해 획일성을 강요하고 진실과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함을 알아야 한다.어느 누구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역사해석을 할 수 없지만 역사를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켜서는 안되며,국가의 개입에 의한 과도한 역사해석을 경계해야 한다.우리에게 전달된 역사적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의 발생과 전달과정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배경까지도 역사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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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4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 / 한길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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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에릭 홉스봄의 장기 19세기에 대한 세 권의 저서 중 최종편인 `자본의 시대'까지 다 읽었다.한편으로는 산정상에 오른 것같은 뿌듯함과 함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문장을 독해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끝에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한 문장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19세기에는 부르지아 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가 형성되고 그 외연을 점점 넓혀가며 결국은 부르주아가 주도적인 지배계층이 되었다.이 책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맞기 전까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승리했으며 또 얼마나 세상을 바꿔 놓았는 지를 홉스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경제는 물론 예술,과학,여성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1873년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불황기에서 1890년대 중반부터 호황으로 전환되며,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번영기가 도래하여 유럽대륙에서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다.또한 영국의 상대적 하락과 독일과 미국의 약진으로 다원화된 세계질서가 구축되고 있었다.대량소비의 등장과 경기호황은 다원화된 세계질서 속에 기존의 열강과 신흥 열강은 상대방에게 직접 총부리를 겨누는 것보다 유럽 외 다른  지역으로 팽창을 거듭하며 국제적인 분업관계를 고착시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후진'국가를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로 나아갔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팬창은 국내의 경제적,사회적 불만과 그에 대한 개선 요구를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인 방법으로 자주 이용되었다.이로 인해 일부 사회주의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제국 내의 물리적 탄압과 식민지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에 따른 저항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서로 적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를 보았다.결국 지금 유럽 노동자의상대적인 생활의 안정은 식민지 민중의 피와 땀이 기반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저항이 있었지만 민주화의 흐름을 거슬릴 수 없었다.1870년대의 대공황으로 인해  1880년대와 그 후에 국제적이고 대중적인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출현으로 정부와 지배계급은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복지와 사회개혁 등을 추진하고 식민지 정복과 같은 시장의 확대와 군사적 승리감을 고양시키고  대중 상업 문화의 발달 등으로 정치적 안정기를 구가하게 된다.또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출현은 부르주아를 비롯한 지배계층이 자본주의 체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들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구실을 하게 된다. 

  이 제국의 시대에 각 열강의 경쟁은 전지구적 규모로 전개되었다.또한 영국의 상대적 약화는 그동안의 유럽의 균형추 역할을 못하게 됨에 따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위험성이  있게 되었다.결국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의 발전은 국가 경쟁에 따른 제국주의적 팽창,그리고 충돌과 전쟁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전세계적인 자본주의의 성장에 따른 국제정치의 불안정한 구조는 국가간의 적대적인 블록을 형성해 갔다.이제 전쟁은 두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적대적인 블록에 참가한 모든 국가간의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 희생은 그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 되었다. 

  홉스봄은 파국으로 치닫는 `제국의 시대'를 보면서 역사에 대해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 않는다.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진보를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 진보에는 거대한 재앙과 고난이 함께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전망을 한다.우리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의 틀 속에서 아직도 벗어나 살지 못하고 있다.우리의 삶과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 당시 비약적으로 형성된 자본주의 체제이며 제국주의 산물인 식민지 지배를 경험해보았으며 여전히 그 잔재가 교육을 비롯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대로 남아있다.그 만큼 19세기가 이루어 낸 것이 대단하고 충격적인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그 당시에도 보다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러나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그렇지만 그 희망이 당장은 굴곡이 심했지만 큰 들에서는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 냈다.우리도 지금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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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5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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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파시즘을 자본주의와 모더니즘 한 가운데서 자라난 것으로 보고있다.이러한 저자 특유의 시각을 바탕으로 파시즘을 분석해 가는 저자의 능력은 다른 두꺼운 책 이상으로 이 책을 알차고 유용하게 만들었다.

 비록 저자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시각이 파시즘의 본질에 폭넓게 접근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지만 파시즘에 대한 문제의식만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저자는 파시즘을 모더니티가 가진 파괴적 잠재력의 표현이자,사회적 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운동을 폭력을 동원해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동적 모더니즘의 한 형태로 보았다.용어가 명확하게 정의내리기 힘든 면이 있지만 저자의 기본적 관점은 계급적 시각에서 본 것이다.이런 시각을 가지고 저자는 파시즘의 작동원리를 체계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해 우리가 파시즘의 본질에 한 발 다가서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파시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지를 저자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파시즘은 패배하였지만 관념과 주장으로 여전히 살아 있고,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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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3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 옮김, 김동택 해제 / 한길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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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장기 19세기'중 1848년 혁명부터 대공황이 시작되는 시점인 187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혁명의 시대>가 이중혁명으로 인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었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면서,그에 따른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 양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그전과 달리 1848년 이후에 자본주의는 변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또한 그로 인해 호황과 불황의 자본주의적인 경기 순환이 역사상 최초로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1841년 혁명은 유럽 전역은 물론이고 남미까지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하지만 혁명의 불꽃은 짧게 타오르다 말고 가장 확실하게 패배한 혁명이 되고 만다.그후 1871년 파리 코뮌에 이를 때까지 유럽은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으로 대호황을 누리며 자본주의의 확장을 도모한다.이러한 대호황을 통해 유럽의 부르주아들은 역사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고 기업활동과 개인의 이윤추구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등 사회 질서를 자본주의 틀로 바꿔 놓는다.또한 유럽의 부르주아 자본주의가 세계로 범위를 확장하며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1870년대를 고비로 대공황을 알리며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자유방임 대신에 정부의 기능이 강화되고 영국의 일방적 독주에서 독일과 미국 등 신흥국들과 경쟁하는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본격적으로 독점 자본주의를 강화하면서 선진국 지배하의 세계 경제에 저개발국을 종속적으로 통합시키는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30여년 기간 동안 부르주아가 바꿔 놓은 세상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가장 혁명적인 것이었다.이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자본주의의 명맥은 오늘 날까지 이어져 내려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이 200여년의 본격적인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는 그 동안 많은 문제점과 함께 여러 번 위기를 경험하였다.물론 지금도 위기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그렇지만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나타날 것인가.결국 자본주의 등장 과정에서 나타난 혁명적 변화가 또 다시 자본주의를 대체하며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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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2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 한길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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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일상의 인간관계까지도 자본주의 원리가 작동하며 그 것의 지배를 받고 있다.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는 이렇듯 우리 삶속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홉스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비슷한 시기의 산업혁명 즉 이중혁명이 유럽의 낡은 체제에 충격을 주어 그 자리를 부르주아 자본주의가 대신하며 유럽의 나머지 세계를 종속시키며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가며 그 당시의 상황을 상세한 묘사와 더불어 홉스봄 특유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마르크스주의자답게 봉건계급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부르주아 자본주의 발전이 역사의 진보임을 강조하며,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에도 불구하고 그 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여기서 홉스봄은 산업혁명에 대해 처음부터 혁명이라 할 급격한 변화는 없었으며 특히 영국은 면공업의 우위와 식민지 개척을 통한 세계 시장 확보와 그에 따른 대량생산의 요구에 적합하게 기존기술을 재배치하고 응용함으로써 생산력의 발전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시발점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주아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그후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적 모델이 되었다.그러나 봉건 귀족 사회는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남았고 도리어 부르주아 문화가 귀족 문화에 흡수되었다.이 시기에는 봉건적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로 부르주아에게 승리의 징조를 보였을 뿐이지 부르주아가 확고하게 우위에 서있지 못한다.비록 능력에 따른 출세의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졌다 해도 이 시대가 민주적이거나 평등한 사회는 아니었다.결국 이 시대에도 관료주의와 봉건적 성격으로 소수에게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였고 또한 자본주의 성장에 따른 대규모 빈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등장이후 대중들에게 정치의식과 정치활동이 주입되며 퍼진 혁명의 물결은 그 것을 막기위한 절대주의 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815년부터 1848년까지 세 차례의 혁명의 기운이 불어 닥친다.이로 인해 민중의 일대각성은 부정을 보고도 힘없이 참고만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그러나 여전히 기존의 귀족제와 절대 군주제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부르주아 자본주의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봉건 세력이 남아 있듯이 우리도 민주화 이후에 선거라는 민주주의 형식을 통해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반민주주의자가 떠올랐다.그리고 유럽의 자본주의가 나머지 세계를 식민지 지배의 방식으로 종속적으로 시장에 편입시키는 것이나 지금의 세계화나 본질적으로 똑같은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홉스봄이 역사의 진보라는 큰 흐름을 거슬릴 수 없음을 주장하듯이 절망스러운 상황속에서도 그 밑에 도도히 흐르는 희망과 진보의 흐름은 언젠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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