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아이
바바라 바인 지음, 박찬원 옮김 / 봄아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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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화자인 그레이스와 그의 오빠 앤드류, 오빠의 애인인 제임스의 이야기가 하나이고, 그레이스가 읽는 책 "그 아이의 아이"가 또 다른 하나이다. 과거에 금기시되던 존재와 관계가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어찌 받아들여지는 지 두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어떤 외국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본 것만 같은 줄거리가 주요 골자로, 그레이스는 동성애자인 오빠 앤드류와 저택에서 둘이 살고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오빠의 애인인 제임스의 아이를 갖게 된다. 이것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고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책 속의 또다른 책 "그 아이의 아이" 의 모드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이웃의 시선과 멸시를 두려워하는 가족에게 외면당한다. 모드의 오빠 존은 동성애자로 사회적 분위기상 그 사실을 평생 숨기고 독신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고 있다가 여동생의 일을 알게 되고 그녀의 보호자이자 가짜 남편으로 낯선 시골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모드는 오빠의 희생과 보호로 아기를 키우며 살게 되지만 오빠의 커밍아웃에 그를 경멸하고 원망하게 된다.

 

혼전임신과 미혼모로서의 힘겨운 삶이나 주변인들의 외면, 사회적 멸시와 모욕의 고통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지만 이 책에서 모드의 그것은 그리 크고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모드는 자신의 무지와 무모한 행동, 주어진 현실을 이해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의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보답, 사생아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딸 아이에 대한 사랑 등 그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자신은 그저 피해자이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일 뿐이라 여기며 버림받았어도 잘 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허영심까지 지니고 있다. 그 시대의 모드와 같은 환경에 처했을 이들과는 전혀 다른 안락하고 편한 삶을 살게 된 행운아인데도 매사를 비뚤어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모드의 캐릭터는 현재의 잣대로 평가한다해도 너무 밉상이다.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모드의 그것과 같다고 여긴 존은 그녀를 지키려 하지만 결국 그는 여동생에게도, 사랑하는 버티에게도 버림받는다.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한 그의 마음과 삶이 더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작가는 그레이스와 모드의 입을 빌려 미혼모의 불안과 두려움, 고립감 등을 차분히 풀어갔지만, 존에게 할애한 부분은 다소 적은 듯 하다.

 

다소 어색한 번역과 두 이야기의 비중 배분이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다만 굳이 그레이스의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로 연결고리가 약했고, 그레이스에게 벌어지는 임신과 후반부의 에피소드는 뭔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홍보문구처럼 사회적 금기를 범한 소외된 소수자라고 하기에 모드는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렸고 주위에 많은 민폐를 끼쳤으며 도중에 몇번이고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뻔뻔하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존과 버티의 경우에도 '남색' 혹은 '성도착증자'라고 불리고 징역살이를 해야할 만큼 사회적 억압이 심한 환경에 처한 동성애자에 대한 뭔가를 보여주기엔 좀 예외적인 스토리이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책의 홍보문구와 과한 기대를 멀리 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 개념없고 뻔뻔한 여자에 대한 면역이 있다면 더욱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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