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 매일 Best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성원 옮김 / 매일출판사 / 200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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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계기는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는 한번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기 위함이다.
사실 전에 분명히 읽었었는데, 후에 들춰보면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들이 있다.
사람의 뇌에도 성장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의 뇌내 성장판은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닫혀버린 듯 하다.
아무튼 그덕에 갈수록 줄어드는 내 메모리 때문일수도 있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 가졌던 생각과 느낌들이 세월이 감에 따라 퇴색되고 변질되어 가는 것도 같은 이유라 하겠다.
둘째는 내가 읽은 책들을 정리해 두고픈 마음이었다.
어린 시절에 본 한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크리스마스에 엄마로부터 받은 그림책이 이전에 읽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째서 엄마는 내가 읽어버린 책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지?
내가 성장한 뒤에도 그 구절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고 마침내 내가 리뷰를 쓰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가끔 리뷰쓰는 것이 어려운 책들이 있다.
장르로 보자면 일단 추리소설이나 여행기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추리의 경우 트릭이나 반전 등이 묘미가 되기에 드러내놓고 칭찬 내지는 비판을 하다가는
스포일러라고 사이버상에서 모다구리를 당하게 된다.
이 경우엔 방문자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 내 블러그에
무지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로 가득한 댓글이 주루룩 달리게 된다.
여행기의 경우는(단순히 지역소개나 맛집, 사진으로 점철된 책들은 제외)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나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나와 코드가 맞는 경우엔 무척 반갑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마냥 거슬려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사설이 길었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워낙 좋은 책이라는 말도 많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수많은 분석가와 비평가들의 입과 손을 거쳤는데다가 그 위대하신(비꼬는 거 아님) 하루키까지
3번이상 안 읽은 사람이랑은 놀지 말라 하셨다니...읽기 전부터 두려움이 몰려온 게 사실이다.
어차피 내용도 빤히 알고
전후 시대 미국의 거품경기와 허망한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등의 겁나는 해설들까지 곁들여져서
남들은 다 깨우치고 느끼는 것을 나만 모르게 될까봐 두려운 맘도 있었더랬다.
물론 모든 독자가 같은 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적, 사회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판단할 필요도 굳이 없다.
책이라는 것은 재미있다, 재미없다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깐.
 

"개츠비"는 화자인 "닉"의 옆집에 사는 부유한 남자다.
미국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장교가 된 후 아름다운 "데이지"를 만나게 되었으나
유럽지역으로 발령받아 기약없이 헤어지게 된다.
데이지는 넘치는 부에 둘러싸여 곱게 살아온 온실속의 화초같은 여인이고
개츠비는 빈털털이 가난뱅이였다.
데이지는 자신의 생활과 삶을 유지시켜줄 "톰"을 만나 결혼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이지를 호강시켜줄 돈을 끌어모은 개츠비는 5년만에 애기엄마가 된 그녀앞에 나타난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개츠비에 대한 열정이 살아난 데이지와
유부녀 그것도 애 엄마인 데이지에 대한 집착스런 사랑과 환상을 버리지 못한 개츠비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가 아닌 피를 부르는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꿈의 땅인 미국 동부에서 자라난 아름다운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애정은
아름답다기 보다 바보스럽게 보이며
맹목적인 그의 행동은 순수를 넘어 위험하게 보인다.
솔직히 개츠비의 그녀에 대한 애정은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가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꿈결같은 존재로 다가온 한순간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곡된 사랑, 그것도 남자의 첫사랑은 자기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함께
5년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왜곡되어져 왔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다.
비록 가진 것 다 가진 부자집 마나님의 사랑에 대한 허황된 욕심에
개츠비와 제2의 삶을 꿈꾸는 데이지의 현실파악이 좀 더 늦고,
개츠비가 그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둘이 함께한 길은 공사가 덜 끝나 그 끝이 끊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과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이 책이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고래적부터 내려온 인류 최고의 가치인 그놈의 "사랑" 때문이리라.
 

하루키가 3번 이상 읽으라고 해서도 아니고
좋은 책은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는 말 때문도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한번 읽고 접어둘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실 때 다섯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미자차처럼
읽을 때마다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다지 긍정적이거나 밝고 진취적인 내용이 아님에도
쓰라린 마음을 보듬어주고 무너져 가는 정신을 기댈 듬직한 기둥이 되어줄 것만 같은 그런 책이다.
이미 육체적 성장의 정점이라는 25살을 한참 전에 지나 퇴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정신적인 부분에서나마 아직은 더 자랄 것이 남았고 그 성장을 도와줄 지침을 줄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개츠비에게 노래 하나를 선물하고 싶다.

저 붉은 바다 해 끝까지 그대와 함께 하리
이 세상이 변한다 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 그대와 영원히 > 중에서... /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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