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보통 책을 읽기 전에 딱 바로 앞에 보이는 제목의 끌림을 통해 이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마련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은 책이더라도 독자를 한 순간 이건 무슨 책이지?

하는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책의 제목은 광고와 같이 짧은 순간에

독자의 마음을 끌어와야하는 중요한 마케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책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지 몰라도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나에겐 어! 십자군전쟁에관해서 이야기를 다룰려나? 어린이 책이니 십자군 전쟁을 주제로 해 모험담 같은 신나는 이야기가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순간의 멘붕이 왔다. 정말이지 첫장부터 20초간 생각을 한거 같다.

내용도 없고 그림체도 낙서해놓은듯 한.... 아 내돈... 진짜 이런 생각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 모습을 보니 뭉크의 절규 라는 그림이 생각나는 걸까? ㅎㅎ (오른쪽그림 첨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장을 넘기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히 내용이 있었기에 말이다. 그래도 그림체는 여전히 ...

글을 읽어내려가면 갈 수록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껴질 수 있었다.

십자군 정쟁의 내용이 아니라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폴란드의 대한 내용이었다.

전쟁사를 관심있어 하기에 많은 책들은 보았지만 대게 거시적관점으로 설명되었기에 당시 피해를

받은 국민들의 고통은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은 없었기에 표정이 어두워졌던거 같았다.

아무튼 1939년 폴란드에서 전쟁이 일어나 부모를 잃었거나 헤어진 여러 아이들이 이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이뤄 서로를 챙겨주며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11살 소녀가 4살짜리 아이를 엄마처럼 보살펴준다.

(이 그림을 보듯이 아이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약간의 신기한 점은 아이들이 폴란드 아이들만이 모인 것이 아니라는 거다.

부유한 유태인의 아이 나치당의 아이 바로 이 점에서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유태인의 아이는 이해하겠는데 전쟁을 일으킨 나치당의 아이까지 어떻게 저 폴란드 아이들이 받아

주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뒤 해설에서 풀리게 된다.]

 

지금까지의 부분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왜 다른 어른들이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안 줄까?

전쟁이라는 상황이기에 혼자만 살겠다는 이기적욕심들만 가졌나?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어른들 또한 자기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고 식솔들까지

있는 경우는 더욱 더 힘든 상황이었기에 다른 아이들까지 생각해 줄 형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점은 아이들도 잘 알았기에 남쪽으로 내려간다. 남쪽으로 가면 전쟁을 피하고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 있을꺼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배고픔과 열악한 상황으로 유태인 아이가 죽었다.

죽은 아이를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형제가 죽은 것처럼 슬퍼하며 묻어준다.

 

그 후 아이들은 다시 남쪽으로 향하다 쓰러진 군인을 만나 정성껏 간호를 해주지만

마지막 희망의 단어 한마디만 남기채 숨을 거두고 만다

"빌고라이로 찾아가렴!"

아이들은 어둠속에서 빌고라이라는 희망 한 단어를 품고 길을 가다 마침내 빌고라이로 가는 방향이

적힌 푯말을 봤다.

하지만 그 푯말은 적군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표기한 작전이었는데 그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 거짓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였다.

  

 

 

그 이후 쉰 다섯 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그러다 다음 해 1월 야윈 개 한마리가 목에 두꺼운 종이를 매달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길을 잃어 살려달라는 내용과 자신들의 위치는 이 개만이 아니 개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쪽지였다.

 

분명 그 내용은 사라진 쉰 다섯명의 아이들의 글이었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못하고 그 개는 결국

굶어죽었다.

 

 

마지막으로 뒷 장에는 왜 이 책의 내용을 십자군 전쟁과 결부시켰는가에 대해 해설이 나오는데

 

중세시대 성지 예루살렘을 침략하기 위한 군대가 십자군이었는데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전쟁의 광기에 눈이 멀었다고 해야할까나 독일과 프랑스 아이들도 전쟁에 참여하기위해 몇 만명의

아이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누구도 예루살렘을 가 보지 못하고 소식이

끊겼는데 노예로 팔리거나 매춘부 농노로 팔렸다고 한다. 이들을 어린이 십자군이라고 한다.

 

저자인 브레히트는 어린이 십자군 처럼 목적지인 예루살램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결국 도착하지 못한 것처럼 빌고라이로 향한 아이들 모두 도착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에 연관을 지어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을 넘겨 가는 내내 어떤 생각도 안들고 그저 한장 한장 다 넘기고 덮은 후에야 많은 생각이 스쳤다.

위에서 의문을 가졌던 나치당원의 아이까지 무리에 있었다는 부분 어른들은 서로를 나누려하고 지배하려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누군가를 나누고 가르는 것이 아닌 서로 하나라고 생각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을 어른들은 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는 것이라는 점을 알았고

그저 한 사람의 광기를 해소하기위해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아직도 인종이 다르다며 서로를 헐뜯는

사람들 자신과 다르다며 비난하는 자들 이러한 많은 자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고 생각하고

옛 부터 지금까지 어른들의 잘못된 욕심으로 인한 피해는 아이들이 받는다라는 안타까움과 아이들을

희망의 빛줄기로 만들어 줄 수 있는건 어른들의 참 된 모습밖에 없다는 교훈을 느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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