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반점 문학의전당 시인선 314
조우연 지음 / 문학의전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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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반점에 들어서면
고독으로 반죽한 면을 뽑아
오래 묵지 않은 신선한 재료로 국물을 낸
통쾌한 짬뽕을 먹을 수 있다.

내일 날씨가 갠다면 아직 덜 마른 달맞이꽃을 따다가 새벽 달빛을 물들일 수도 있겠다[시 일부,76쪽]

남원식도가 저 닮은 놈의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내고 있다. 빨갛게 녹슨, 잘린 대가리의 눈알이 칼등에 새겨진 시퍼런 파도 문신을 쳐다보고 있다.[아버지 일부,64쪽]

도마는, 나무는 무릅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썰물이 되어 밀려가는 굳은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만한 난도질에 한 둥치 사상이 쓰러진 줄 알겠지만 그저 무릅 한 편(片)을 내어주었을 뿐[나무의 무릅 일부, 56쪽]

나는 검은 벨벳 치마를 벗어 밤의 한가운데에 어린 딸을 뉘이고
못다 찬 글(文) 바구니를 들고 어둠의 정중으로 푹푹 걸어 들어간다

잠든 아이가 달의 뿌리처럼 자라는 그믐밤
해진 벨벳을 뒤집어쓰고 잠든 것처럼 죽기 좋은 밤[벨벳 문 일부, 19쪽]

폭우반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폭우 속으로 푹푹 걸어들어가도 무섭지 않겠다.
춥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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