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넘어서 - 2010년 개정증보판
이한 지음 / 민들레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1.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문제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교육을 맡고 있는 학교라는 '통제기구' 안에서
이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것뿐이다."

10여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을 때
내 눈이 처음 머문 곳은 뒷 표지의 바로 이 문구였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주범으로 흔히 '입시교육'이 거론된다.
왜 우리 교육은 오로지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는가?
그것은 대학입시를 통과해야 소위 '좋은 학벌'을 취득할 수 있고
이른바 '좋은 학벌'이 없으면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교육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승자/패자 문제,
즉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범위를 '교육'영역에만 한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교육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입시제도도 바뀌었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는 교육환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스무살 무렵 취득한 '학벌'이 평생 신분처럼 따라다니는 사회. 정말 비정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뒷 표지의 문구에서 나타나듯이
교육문제를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2.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다 공감할 수 있을 만한 학교현장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마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그때 미술교사가 들어서면서 소리를 지른다. "방금 떠들었던 놈들 다 일어나!"
... "체육교사는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훑어본다. "가서 가위 가져온나. 내 책상 알지?""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고등학교 때가 떠올라 절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3.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싸X지 없을 정도로 솔직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교사가 읽는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것 같다.   

교사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 싸X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교사를 공격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젊은이가 쓴 책이어서인지
자연스레 교사에 대한 풍자와 분노가 묻어난다.

"그런데도 그런 필기를 지치지도 않고 날마다 시키는 까닭이 무엇일까? 솔직히 많은 교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달리 수업을 진행할 능력이 없고,
또 필기는 쇼 진행에서 간편하면서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4. 사실 90년대 후반에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책을 대략 훑어본 처음 느낌은 '나보다도 어린 친구가 정말 똑소리나게 잘 썼네. 대학교 2학년생이, 그것도 법대생이 어떻게 이런 책을 썼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교육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내 나름대로 교육문제 해법에 대한 입장('학벌철폐 및 대학평준화', '노동시장에서의 임금격차 해소')이 명확했기에 학교현장과 교육문제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 옳은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대안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몽상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다시 나온 개정증보판 '학교를 넘어서'를 읽고 난 느낌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내 생각이 조금 변해서일 수도 있다.) 대안이 한층 더 정교해졌고 뭔가 확실히 균형이 잡힌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 이한은 말한다.
'학교'를 없애자고. 그것이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학교'란 '국가에 의해 제도화된 현재의 교육기관'를 의미한다.)

학교는 우리에게 쓸모있는 지식을 가르쳐주지도 않으며
단지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서열을 매기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학교는 부모의 계층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정당화하는 기제이며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를 비인간화하는 주범이다.
학교체제의 본질은 사회계층화기구이다.

저자는 이것을 매우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체제의 대안으로 '탈학교사회'를 제시한다.
또한 탈학교사회로 나아가는 교육 실천들로서
학습공동체, 학습협동체, 학회,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2부 3장에서 '탈학교사회를 위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본인부담률을 저소득층에게는 매우 낮게 고소득층에게는 매우 높게 적용하여
전국민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교육보험제도'는 교육기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매우 훌륭한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교육화폐제도'와 지식개방작업, 분야별 평가제도, 학습네트워크센터, 학력폐지법 제정 등의 아이디어도 무척 참신했다.

"사회에 백해무익한 대학입학시험과 같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입학시험은 대학이 교육자원을 독점하고 사람들에게 서열을 매기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야별 평가제도의 확립, 학력폐지법의 제정으로 대학의 교육독점과 선별 기능을 우선 해체하고,
대학의 교육자원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방하는 체제로 바꿔서 대학을 실질적인 학원으로 만들고 그 학원에 다니는 비용은 교육보험 형태로 학습자에게 공적으로 지원한다면, 대학입학시험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5.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부록이었다.

패기만만했던 대학교 2학년 법대생이 좀 더 세련된 교육이론가로, 훌륭한 교육운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부록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동사건 전문 변호사로서도 활동하고 있다는데, 참.. 그 재능과 열정이 부럽다.) 

<학교를 넘어서>를 집필하게 된 계기, 저자만의 시간관리나 공부방법, '서울법대생이라는 기득권을 맘껏 누릴 거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학교를 넘어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 대학평준화운동(국공립대 네트워크)에 대한 입장 등이 부록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의 생물학적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어린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솔직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나라의 교육문제와 그 해법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저자는 나의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틈나는 대로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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