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0
캐서린 앤 포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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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의 새로운 작가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작품을 읽었다.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집인데 서문을 제외하고 총 세 개의 중간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꽃피는 유다나무, 창백한말 창백한 기수, 기울어진 탑. 

 먼저 꽃피는 유다나무 단락은 여러 단편들을 많이 모아둔 느낌이 강하고, 창백한말 창백한 기수와 기울어진 탑은 조금 분량이 있는 중단편들을 모아두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순서대로 읽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창백한말 창백한 기수라는 이름에 이끌려서 그 부분부터 읽었지만 꽃피는 유다나무라는 소제목 속의 작품들이 개인적으로는 더 인상깊게 읽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그 애He> 라는 작품이다. 꽃피는 유다나무에 속해있는 단편소설인데 이 작품이 캐서린 앤 포터의 다른 작품들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미국이 아닌 나라의 사람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뒷표지의 설명 부분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그 부분은 번역자나 출판 담당자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느꼈던 것들을 요약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진 작품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 앤 포터 단편집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백한말 창백한 기수>와 <정오의 와인> 등은 전쟁 시기의 미국 혹은 미국의 목가 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고 독특한 것들에 대해서 알수 있게 된 것은 좋았지만, 그런 생활과 먼 삶을 살았던 내가 깊게 공감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그 애>는 미국이라는 배경보다는 한 아이, 휘플 씨의 둘째 아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무척 가깝게 느꼈고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나 교훈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애>의 주인공인 휘플 씨의 둘째 아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지능을 가진 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남들 앞에 보일 때에 동정을 받고 창피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부모이기 때문에 그 애를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휘플 부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거의 이루어진다. 타인의 시선을 염려해서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려고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완전히 순수하게 사랑할 수 만은 없었던 휘플 부인의 심리가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가장 인상깊게 읽은 것은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애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애를 그애라고 부르고, 둘째 아들이라고 부를 뿐 부모조차도 그 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캐서린 앤 포터 작품 세계의 특징 중 하나가 약자에 대한 억압이라고 언급된 것을 보았었는데 나는 이 작품이 바로 그런 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외에도 <오랜 죽음의 운명> 에서 20세기 미국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서 잘 발견할 수 있었다. 사교세계와 결혼, 사랑과 자존심 그런 것들이 당시의 미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 미란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캐서린 앤 포터> 는 남부 미국의 삶과 생활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무척 많았고, 여러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평범한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그 시대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사고관념을 중심으로 행동했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는 전쟁이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미란다가 가지고 있는 우울함과 불안정함을 무척 잘 표현했다. 즐겁게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이 시대와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불현듯 우울에 빠지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애덤과 함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외로워하고 다른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을 부러워하는 허무한 심리도 잘 내보였다고 생각한다. 미란다는 전쟁에 무덤덤해보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미란다의 대사 중에서 내가 무척 인상깊게 본 대사가 있다. 조금 발췌해보면, "애덤,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끔찍한 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눈에서 두려움, 의혹, 어두운 표정이 보인다는 거야. 다들 마음과 정신의 문을 닫아걸고 그 문틈 밖으로 나를 내다보는 것 같다고 할까. (중략) 그런데 사람은 누구든 두려워하며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이 대목인데, 전쟁에 대한 시선이 잘 나타나서 무척 좋았다.

 진지한 이야기도 많고 불안과 우울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 많은 작품집이었는데 그러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캐서린 앤 포터라는 작가를 이루는 요소들이고 캐서린 앤 포터만의 작품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의 연보를 보면 가정폭력과 유산, 이혼과 학대 등 무척 마음아픈 삶을 살았는데 이런 아픔들이 그녀의 작품들을 만들고 또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게 한 것 같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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