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
필립 쿤 지음, 이영옥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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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한국의 지난날, 선량한 사람들에게 반국가적인 위험 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공포와 의심을 조장했던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다"

- 저자 서문中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1785년은 청이 건국되고 안정적인 기틀을 마련하여 명말 번영했던 상업이 다시 일어나고 외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은이 유입되고 있어서 경제가 활황을 향하고 있을 때였다. 청의 황제는 건륭제로 만주족의 완강하고 견고함을 물려받았고 어렸을 때부터 황제수업을 받아서 한족 문화와 예술에 정통해 있었다. 그는 만주족에 대한 애착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족 에술 부흥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황제로 알려져 있다. 


청대 시기가 역사적 절정기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을 때 과연 평화 시기는 모든 인민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는가라는 의문점은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주제다. 실제 경제가 부흥하고 정치가 안정된다고해서 그 모든 혜택을 기층 인민들 하나하나가 모두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러한 혜택은 가장 상층부에 있는 계급부터 흡수되어 아마 기층의 바닥까지 도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건의 기저에 희생양으로 등장하는 소외된 계층, 승려, 거지, 떠도는 자들은 자원의 분배 과정에서 소외되고 나약한 존재들이다-힘든 시기가 오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소외된 계층부터라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이들을 탄압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이들은 경제적 경쟁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자원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이들이었다. 물질적 풍요는 전체적으로 보면 한 국가를 부의 길로 이끌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속에서는 그 부를 생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해야되는 인민들이 기저에 깔려 잇었던 것이다. 


1768년에 청 제국은 강성한 왕권을 기반으로 상당히 안정된 정치체제를 갖춘 진정한 제국이 되어 있었다-영토확장도 마무리된 상태다. 안정된 제국의 기반은 상위계층의 만주족과 그 협력집단이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은 서서히 한족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만주족 관료들의 민족적 정체성 상실과 동화에 불만과 고민이 많았던 청 황제의 입장에서는 변발을 잘라서 그것을 요술적 행위에 이용한다는 의미는 청 왕조의 민조적 정체성과 존립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만주족과 한족 관료들이 건들고 싶지 않은 저변에 깔린 왕조의 이데올러지 갈등을 표면화 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보이지 않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 하였을까? 평상시에 항상 혼백들과 귀신들에 둘러 싸여 생활하던 일반 민중들이 왜 갑자기 요술의 공포를 확산 시키고 두려움에 떨었을까? 번영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던 시절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그것이 부풀어 오르고 사람들을 짓누르는 풍선처럼 커져버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단순히 무능하고 태만한 청조 관료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사건 처리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 동조한 사람들과 관료제가 낳은 모순이 동시에 존재 했다. 일반 민중은 그 사건이 낳은 공포를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맞게 이용하려고 했고, 황제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관료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기로 했다. 대중들이 이해하는 요술의 공포는 동양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귀신과 혼백들에 대한 공포가 일상 생활에서 그 분출구를 찾아낸 상황이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광풍은 관료 시스템이 만들어낸 관료주의적 대응 방식의 공포다. 만주족의 고위 관료들은 한족 문화에 젖어들면서 나태하고 관성화되어 갔다. 건륭제는 이런 만주족의 동화 과정에 대해서 심히 우려를 표현했으며, 사건 때문에 각성의 순무들과 주접을 주고 받을 때에도 그런 의중을 들어내고 있다. 청조의 황제는 절대 권력을 휘두를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 권력은 시시때때로 제조적 제약에 걸려서 그 칼날이 무뎌졌으며,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감시의 눈길은 관료들간의 담합과 복지부동적 저항에 의해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건륭제는 이런 담합에 의한 복지부동 때문에 개인적인 첩자를 심어두고 보고를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던 황제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거나 눈밖에 난 무능한 관료를 숙청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에 대한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1786년 청조의 정치체제를 분석하려고 한다. 단순히 허황된 공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거기에 공포는 증폭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광란의 폭풍속으로 이끌 수 있는 사건이었다. 마치 현대의 문화혁명과도 같은 광풍이 불 수 있는 요소였다. 대중의 망상과 건륭제의 환영이 결합하여 사건은 증폭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요술의 힘에 이끌려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 들어간 것이다. 황제의 망상 때문에 그러부터 받는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소용돌이도 무능하고 타락한 관료체제 때문에 멈춘다. 이는 유교적 사상에 입각해 군신관계를 유지하던 도덕적 관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ㅔ기말 서양의 침탈로 중국의 커다란 곤궁에 처했을 때 아무도 이런 청렴한 사상으로 무장한 관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중국의 시절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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