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는 국가 -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사회 진단과 전망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열대림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평론가이며 저널리스트, 도쿄대 교수로도 활동한 知의 거인이 일본 사회를 진단하고 조망했다는데 제목이 ’멸망하는 국가’라?  ’일본이 정말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나?’

 책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2005년 일본 열도를 흔들었던 라이브도어 사건으로 첫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흥 IT기업인 라이브도어의 사장 호리에가 후지TV의 경영권 장악을 목적으로 닛폰방송의 주식을 사들이기 위한 자금 마련 과정에서 증권 거래법을 위반하고 정경유착의 냄새를 풍기는데 ...사건을 파헤치며 블랙 세계와 정경의 유착, 사건 뒤에 숨어있는 거대 금융자본의 강탈 모습과 거대 자본 단독의 수익구조를 가능케한 고이즈미 정권을 비판한다.
사건과 연루된 인적, 자본의 맥락에 대한 그의 해설을 들으면 피카레스크 로망 한편을 보고 있는 듯 흥미진진하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었기에 드러나는 진실마다 눈이 번쩍 뜨이고, 대형 사건 뒤에 숨어있는 이면의 핵을 파헤치는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2005년 일본은 황손이 공주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성 천황 내지는 모계천황의 합법화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웠다. 황태후의 왕자 생산으로 문제가 수면아래로 가라앉기는 했지만 황실의 대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일임을 자료들로 제시한다. 임금은 무취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줄줄이 후궁들을 거느렸던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의 행적도 더불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재미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역사적으로  반일 학생운동, 5.4운동이 근대 중국이 형성되는 뿌리가 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2차 세계대전후 일본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도쿄 재판을 문제 삼는것은 샌프란 시스코 강화조약을 문제 삼는 것이며 이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근거를 무시하자는 것과 같은것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거기에 더하여 침략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음으로서 진실을 모르는 일본 젊은이와 중국의 젊은 세대간의 감정적 격차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이는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의 걸림돌을 만드는 것으로서 전범국인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독일식 사죄를 할 것을 촉구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일본인의 입에서 나온 바른 소리라 반갑기 그지없다. 

일본 헌법 9조에 대한 해석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헌법 9조를 개정한 일본이 자위대를 등에 업고 또 다시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선이 압도적이며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일본인의 속내에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을 듯 한데... 다치바나 다카시는 헌법 9조야말로 일본을 지킨 구국의 책략이라 한다. 헌법 제정 당시 맥아더의 일방적 의견을 수용한 모양새였으므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미국이 우방의 도리를 내세워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미국 주도의 헌법9조에 발목이 잡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이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병력을 투입하며 국민의 피를 흘릴 때도 일본은 헌법9조의 울타리 안에서 국민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편 민영화를 둘러싸고 실리의 저울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계의 모습과 고이즈미의 승부사 기질, 민영화의 그늘에 가려진 미국의 욕망등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것은 경쟁구도를 도입하고 시장 자율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국가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영화의 구도속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음모가 숨어있다는 해석은 무섭기까지 하다. 미 제국주의의 책략이 거기까지 미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가 너무나 커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른다.

그 외에도 고이즈미 총리와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초, 다나카 가쿠에이의 관계, NHK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와 정보원들간의 역학관계등 읽을거리가 다양하다.

 사람 사는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이래서 한국은 안되는거야."하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로 여겨지던  정경 유착, 검은 손과의 연루, 부실공사... 이런 일들이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일본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하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떠올리기 쉽지만 NASA가 챌린저호 사건의 근본적 해결에 나선건 사건후 17년이 지나 컬럼비아호 사건으로 악몽을 재현된 다음이라는 사실!
우리가 못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세상은 선과 악이 어우러져 사는 그런곳이었던 거다. 이 책의 가치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보다 ’일본사람은 이런 면에서 알아주는데 우리는 그게 아쉬워.’하던 생각들이 일본 제국주의 시절 그들이 우리의 눈을 흐리기 위해 뿌려놓은 연막탄에 지나지 않았음을 발견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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