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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ㅣ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오래된 작품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었다. 나는 예전에 영화를 먼저 접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 살인자가 사랑하는 딸, 살인을 즐기는 또다른 살인자. 이 셋이 트리오를 이루며 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서술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알츠하이머에 걸렸기 때문에 기억은 정확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진실은 어둠 속 심연에 가려진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필립 딕의 유빅이 떠오른다. 얼핏 보면 sf 소설인 유빅과 이 작품의 관계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내내 유빅이 떠올랐다. 유빅은 죽은 자의 의식을 주기적으로 되살려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초능력자와 반초능력자가 대립하는 혼란스러운 세계이다. 유빅이라는 물질을 둘러싸고 모두가 경쟁하지만 정작 유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누군가는 두려움을, 누군가는 쾌락을 느낀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혼란, 초능력이 난무하고 시간과 공간은 힘을 잃어간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의 살인자의 세계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는다. 규범과 도덕은 무너지고 시간과 공간이 부정확한, 비윤리적인 세계. 혼란스럼고 당황스러운 세계. 끔찍한 살인의 기억 속에서 딸을 지키려는 그 모순적인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당당한가?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잔의 독주일지도.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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