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들 - 2018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도서
정영선 지음 / 산지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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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람들 정영선의 생각하는 사람들>

 

   난민들. 정치적·경제적 이유 등으로 북한을 탈출해서 반도가 아닌 섬나라 남한에 당도한 사람들. 목숨을 걸고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원에 수용되어 심사와 교육을 받아야 남한에 정착할 수 있는 탈북자들이다. 영화 등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조선족 동포들(대개가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과 달리 탈북자들의 삶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20183월까지 탈북자가 3만 명을 넘어섰고 생계 해결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질을 동경하는 탈북자가 생기고 있다. 종전 선언을 앞두고 있는 지금, 작가는 통일을 경제적 대박으로 인식하는 주류 시각을 거부하고, 소외와 차별 그리고 의심까지 받는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더불어 그들을 흔드는 분단의 사각지대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고발한다.

 

   작가는 정치적 이념보다는 인권과 자유에, 경제보다는 인간애에 카메라의 조리개를 맞춘다. 르포나 다큐와 달리 소설가의 렌즈에 담긴 탈북자의 삶은,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처럼 역동적이면서도 다채롭다. 자유를 동경하는 수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창주, 작가를 꿈꾸는 선주 등등. 이렇게 탈북의 경위나 정착의 양상은 제각각 다르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래에 대한 공포로 자신들의 삶이 포박되어 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해소될 수 없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통으로 현재의 삶은 끝없이 흔들린다. 또한 지원금을 받고 정착을 하더라도 언제든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 역시 양극화 등 여러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준비한 또 하나의 렌즈는 하나원에서 청소년 상담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는 주영과, 남철수와의 관계다.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람의 시선을 대변하는 두 사람은, 명령 하달과 이행이라는 위계적 관계와 더불어 기형적인 애정 관계를 맺고 있다. 체제 유지와 선전의 도구로 탈북자들을 대하는(주영을 성적 대상으로만 대하는) 남철수와 달리 주영은 수지와 선주를 통해 인간애를 깨닫고 결국에는 그의 명령을 거부한다. 주영의 선택은 (결말에는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남철수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주영 자신에게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 렌즈는 주영의 가족사이다. 창주와 엄마 금향은 주영과 이산가족으로 연결된다. 고전적인 면이 없지는 않으나 분단 상황이 민족의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되는 설정이다. 시가 고민과 아이 교육에 대한 대화는 남북한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속은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호두와 달리, 속에 하나의 팥 앙금을 가지고 있는 호두과자를 결말에 등장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탈북자들끼리의 관계와 갈등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수지와 창주, 선주와 다른 탈북자의 화음과 불협화음을 담았다면 더욱 정밀하고 역동적인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사각지대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간 작가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가 될 수도 있겠다. 그곳은 여전히 감시와 처벌의 눈길이 도사리고 있으며, 탈북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고 드러내지도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렌즈를 가지고 사각지대로 들어서길 채근하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읽은 독자에게, 인상 깊었던 인물은 수지와 병욱이다. 수지는 북한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았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선택해서 남한에 정착한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에 끝도 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누구보다도 남한의 생활에 정착을 잘 하고 명문대에 진학하여 자신이 선택했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경제나 이념보다 자유와 더 나은 삶의 질을 선택하는, 새로운 탈북의 양상이다. 만약 통일이 되어 남북한의 주민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게 되었을 때 수지의 이러한 가치관이 두 나라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단초가 되지는 않을까?

   위장 간첩 병욱이가 단둥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 중 단체 관광객을 따라 나서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행이 자유를 의미한다면 병욱 역시 수지와 동일선상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단둥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병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념에 충실하지 못한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아님은 확실하다.

 

 

* 선주 씨의 글을 결말부인 4장 첫머리에 삽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본일까 아님 소설적 각색일까? 진본이라면, 선주 씨의 글이 사실적 체험을 기록한 글이라면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의도로 보인다.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적확하게 보여주는 구성적 묘미다, 아니면 탈북한 다음 정착에 집중하는 전체 구성에 해가 되는 사족이다. 논쟁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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