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괜찮은 이유
로만 무라도프 지음, 정영은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책의 앞표지에서 제목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과 고양이 삽화가 어우러져 이 책이 고양이를 주제로 삼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필자의 추정이 맞을까?

책의 뒤표지에 조르주 페렉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거주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이들은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신호만 취하고 관련 없는 동작들은 무시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기술을 완전히 터득했다. 

고양이에 비해 인간은 어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강박증이 있다. 그래서 헛된 시간을 보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다르게 생각한다.

저자 로만 무라도프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깊이 있고 철학적인 에세이와 함께 자신의 아름다운 그림을 선보였다. 

그는 산책과 사색 등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프롤로그에 앞서 저자는 단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사랑에 빠질 이유도, 단풍을 모아야 할 이유도 없다.'라는 말에서 저자의 메시지가 드러난다.

프롤로그 서두에서 저자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다닐 하름스가 쓴 "나는 오늘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상관없다."를 예시로 들고 있다. 사실 하름스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위의 문장을 썼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이 아니다. '특정 목적을 가진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차례는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길을 잃는다는 것 - 길을 잃을 때, 우리는 자신을 잃고 다시 자신을 찾는다
2. 기다림과 반복의 미학 - 매일 걷는 길도 매순간 다른 길이다
3. 침묵이 만들어내는 소리 -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4.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 -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그 무엇일 수도 있는
5.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다는 것 - 부조리하고 복잡한 삶을 이해하는 방법

저자는 본문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의 작품을 수시로 인용하고 있다. 작가, 예술가, 프로듀서, 만화가, 가수, 코미디언, 사진작가, 평론가 등 다양하다.

1장에서 레베카 솔닛이 '길 잃기 지침서'에서 길을 잃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는 거라면서 이는 지리와 지형을 따라가며 얻게 되는 초자연적 상태로, 의식적 선택의 결과이며 스스로 택한 순응이라고 한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길 잃는다는 것은 정해진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베카의 말대로라면 자신을 잃는 길 잃기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작가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저자는 책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작가의 상상력이 표현된 삽화는 자칫 난해할 수도 있는 글에 쉼표와 같은 역할을 제공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우리의 삶이 대단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삶의 이야기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우리는 삶이 우리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중 하나를 따라갈 수 있다.

마지막에 참고문헌과 감사의 말이 있다. 마치 방대한 논문을 읽은 것 같다.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조르주 페렉의 말에서 착안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으로 정해졌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고양이에 관한 주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참고문헌에서 보듯 저자는 수많은 책들을 인용하면서 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그의 메시지는 무엇이냐구?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있어도 그 행위조차 재충전이나 사색의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라는 것은 아니다.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을 펼쳐든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책이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빠져들 것이다. 이 책은 철학적인 깊이와 톡톡 튀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