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아프리카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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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 1937


로마 시대 작가 플리니우스의 글 <Ex Africa semper aliquid novi (Out of Africa always something new,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에서 제목을 따온, 덴마크 여류 작가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이 17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담은 회고록인데 아마 이 책을 읽은 이 십중팔구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으로도 유명한 1985년 시드니 폴락 감독, 메릴 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 7개 부분의 상을 받은 (각본상 포함) 영화를 통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영화는 카렌과 데니스의 로맨스가 주축을 이루면서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그렸다면 소설에서는 둘의 로맨스는 찾아볼 수 없고 고작해야 절친한 친구 정도로 그려진다. 대신 소설은 아프리카가 주인공이다. 즉 아프리카의 자연과 아프리카인 (키쿠유족, 마사이족, 소말리족 등), 그리고 원주민들과 버클리 콜과 데니스 핀치해턴 등이 주민 간의 우정을 그린다.


내 경우에도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하면서부터 원주민에게 뜨거운 애정을 느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흑인종의 발견은 내 인생의 새 지평을 멋지게 열어 주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심성을 타고난 이가 동물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여 나이가 든 후에 동물과 접촉하게 되거나,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취향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이가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숲에 들어가거나,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이가 다 자란 뒤에야 처음으로 음악을 듣게 된 경우가 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터였다. 29


영화에서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가 맡은, 카렌에게 매독을 옮겨준 남편 브로르 본 블릭센피네케 남작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카렌의 아버지는 빌헬름 디네센은 카렌이 10살일 때 매독에 걸린 것을 비관하여 자살하였고, 카렌의 남편도 매독에 걸리고 둘은 덴마크로 돌아가 치료를 받는다.


카렌의 커피 농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더운 아프리카가 아닌 해발 1800미터 고원이며 고도가 높아서 커피 농사가 잘되지도 않고 메뚜기 떼의 습격과 몇 차례의 가뭄, 그리고 커피 농장의 화재와 함께 결국 카렌의 커피 농장이 파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소설에는 없었지만, 영화적인 재미와 감동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즉 데니스와 함께 아름다운 아프리카를 비행하던 인상 깊은 비행 장면, 축음기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던 장면, 데니스가 죽은 후 무덤에 사자가 찾아오는 이야기는 소설에서도 실제 그려진다.

내게 축음기를 준 사람도 그였다. 축음기는 내 마음의 기쁨이었고 농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농장의 목소리가 되었고 <나이팅게일과도 같은 숲속 빈터의 영혼>이 되었다. 이따금 데니스는 내가 커피 밭이나 옥수수밭에 나가 있는 사이에 예고도 없이 새 레코드판을 들고 와서 음악을 틀어 놓았고 그런 날이면 해 질 무렵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맑고 시원한 저녁 공기를 타고 흘러오는 선율이 마치 그의 웃음소리처럼 그가 와 있음을 알려 주었다. 원주민들도 축음기를 좋아해서 우리 집 주변에 서서 음악을 들었으며 몇몇 하인들은 집에 손님이 없을 때 내게 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틀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카만테는 무슨 이유에선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다장조 아다지오 악장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맨 처음 내게 그 곡을 틀어 달라고 부탁할 때 자신이 듣고 싶은 곡이 무엇인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261


나는 데니스 핀치해턴 덕에 농장 생활에서 가장 황홀한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프리카 하늘을 나는 일이었다. 도로가 없거나 거의 없고 초원에 착륙이 가능한 곳에서는 비행이 삶에서 지극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며 하나의 세계를 열어 준다. 데니스가 자신의 경비행기를 가져왔고 우리 집에서 겨우 몇 분 거리에 있는 초원에 착륙이 가능하여 우리는 거의 날마다 비행을 즐겼다.

아프리카 고원 지대의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면 굉장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빛과 색채의 오묘한 결합과 변화, 햇살 환한 초록의 땅 위에 걸린 무지개, 거대한 수직 구름, 사나운 검은 폭풍, 이 모든 것이 주위를 감싸고 질주하며 춤춘다. 사선으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빗줄기가 공중을 하얗게 채운다.

비행의 체험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기존의 어휘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와 수스와 화산, 롱노트 화산 위를 날 때는 멀리 달 저편에 있는 땅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초원의 동물들이 보일 정도로 저공비행을 하기도 하는데 신이 처음 동물들을 창조해 놓고 아담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맡기기 전에 느꼈을 법한 그런 감정에 젖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경치가 아니라 활동이며 비행하는 사람의 기쁨과 영광은 비행 그 자체이다. 도시 사람들은 모든 움직임이 일차원에 한정되어 있고 줄에 묶여 조종당하기라도 하듯 정해진 선을 따라 걷는 슬픈 고난과 예속의 삶을 산다. 그러다 들판이나 숲을 거닐게 되면 선이 평면이라는 이차원으로 바뀌며 그것은 노예들에게 프랑스 혁명과도 같은 멋진 해방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늘을 날면 삼차원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며 향수병에 시달리던 우리의 가슴은 오랜 유배 생활과 갈망 끝에 우주의 품으로 뛰어든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땅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낄 때마다 위대한 발견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이제 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어.>274


하루는 나트론 호수로 날아갔는데…. 위에서 보면 흰 밑바닥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는 하늘빛 물이 시리도록 맑아서 잠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으며 황량한 황갈색 땅 위에 자리한 물이 마치 반짝이는 거대한 아콰마린처럼 보였다. 고공비행을 하다가 이곳에서 고도를 낮추면 짙푸른 우리의 그림자가 연푸른색 호수 위를 떠다녔다. 이곳에 홍학이 수천 마리 살고 있었는데 소금기 있는 물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고 확실히 그 호수에 물고기는 없었다. 우리가 접근하자 홍학들은 커다란 원과 부채 모양을 이루며 흩어졌는데 그 모습이 석양의 빛줄기 같기도 하고 비단이나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 문양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275


나는 아프리카를 떠난 후 데니스의 무덤 근처에서 이상한 일이 목격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나 역시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마사이족이 은공 판무관에게 보고하기를, 일출과 일몰 때 핀치해턴의 무덤가에서 사자들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합니다. 암수 두 마리가 무덤에 찾아와 오래도록 서 있거나 누워 있었다는군요. 화물 트럭을 몰고 카자도로 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는 인도인들 중에도 사자들을 본 사람들이 있답니다. 당신이 떠난 후 무덤 주위의 땅이 평평해져서 넓은 테라스처럼 되었지요. 그 평평한 땅이 사자들에겐 초원의 소들과 야생 동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된 듯합니다.>


카렌은 정착 초기에는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즐거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생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야생 동물과 이웃해서 살아가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낀다.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우리 목숨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 Frei lebt wer sterben kann(죽을 수 있는 자, 자유로이 산다).」 - 사자 사냥을 나가며- 268


나는 이구아나를 쏜 적이 있다. 가죽으로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나는 그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돌 위에서 총을 맞고 죽어 있는 이구아나에게 다가가는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이구아나가 선명한 색을 잃어 가는 게 보였다. 이구아나가 지닌 모든 색이 마치 긴 한숨을 내쉬듯 빠져나갔고 내가 다가가 만졌을 때는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우중충한 잿빛이 되어 있었다. 그 찬란한 빛을 발했던 건 이구아나의 몸속에서 맹렬히 고동치던 살아 있는 피였다. 그 불길이 꺼지고 영혼이 빠져나가자 이구아나는 모래 자루처럼 죽은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295


파씨마의 커다란 흰 수탉이 으스대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다 우뚝 멈추더니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하면서 볏을 세웠다. 길 건너편 풀숲에서 작은 회색빛 카멜레온 한 마리가 나왔는데 수탉처럼 아침 정찰을 나온 것이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수탉은 만족감에 찬 꼬꼬 소리를 내며 곧장 카멜레온에게 다가갔다. 카멜레온은 수탉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카멜레온은 겁에 질려 있었으나 무척 용감해서 딱 버티고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 적을 겁주기 위해 몽둥이처럼 생긴 혀를 수탉을 향해 획 내밀었다. 수탉은 놀란 듯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날래고 단호하게 부리를 망치처럼 내리찍어 카멜레온의 혀를 빼먹었다. 그 둘의 대면은 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파씨마의 수탉을 쫓아 버리고 커다란 돌멩이로 카멜레온을 쳐서 죽였다. 카멜레온은 혀로 곤충을 잡아먹고 살기에 혀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아침에 마침 그 자리에 있어서 카멜레온이 고통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어 가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 줄 수 있었던 것이 너무도 기뻤다. 432


영국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법적으로 땅을 매입할 수 없었다,

아직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의심의 여지 없는 자신들의 땅을 갖고 있었고 백인들이나 그들의 법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었다….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는 건 단순히 땅만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과거와 뿌리, 정체성까지 빼앗는 것이다. 그들이 보아 왔던 것이나 보게 될 것을 빼앗는 건 어찌 보면 그들의 눈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은 백인의 농장에서, 자신들의 땅이었던 곳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간다. 카렌은 그들의 주인, 음사부 (마님)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신적인 존재로 여기지만 의사, 재판관 그리고 인간으로서 대하며 야만인이 아닌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원초성을 간직한 인간으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깊이 교류 한다.

모든 것을 잃고 떠나기 전 갈 곳을 잃은 원주민들이 정착할 새 터전을 찾아주려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원주민 노인들은 카렌을 위해 법적으로 금지된 ‘은고마(춤판)을 열어 주려 하고, 카렌이 떠나는 길에 많은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환송을 나와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애초에 내 계획은 사소한 것은 모두 포기하고 내게 아주 중요한 것만 지키자는 것이었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일종의 몸값으로 소유물을 하나씩 버리는 것에 동의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나 자신이 운명이 버릴 것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되어 있었다.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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