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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튜트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평점 :
다작하지만 항상 질은 보장되는 성실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이 2020 여름 휴가를 책임진다! 제목은 연구소..정도로 번역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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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는 과도기의 남자 팀. 플로리다 지역의 경찰이었던 것으로 추정.
애매하게 경찰직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가서 경비 일을 구하려고 비행기를 탔지만 어쩌다보니 히치하이킹을 거듭하다가 근대화의 세례를 좀 덜 받은 듯한 작은 마을 듀프레이에 야경꾼으로 취직한다.
중간 중간 작가 특유의 생각이나 유우머로 사건을 따라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를테면 초반팀이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난 도서관장 분과의 씬. 트위터에서도 트럼프를 자주 까시는 분답게 시니컬하시다가
- 그 협회는 돈이 없는데 "왜냐하면 트럼프하고 그 일당이 다 빼앗아갔거든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수준은 당나귀가 수학을 이해하는 수준하고 비슷해요. " p.24 흠. 근데 도서관협회는 항상 돈이 없는 거 아닌가요
갑자기 따뜻한 말을 하신다.
-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그도 어떨 때는 그랬다.) 그래도 미국은 아직 살만한 곳이었다. p.25
점점 더 엿같아지기만 하고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슬로건)은 반대 급부로 존재감을 발산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한 문장.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에게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과 호의에서.
이 마음은 미국이 아니더라도 2020년을 살고 있는 세계인이라면 이해할 마음이 아닐까.
그래도 인스티튜트랑은 무슨 상관인가.. 할 무렵 팀은 잠시 퇴근하고 다른 친구가 나온다. 12살에 미국의 수능같은 SAT을 보고 명문대 두 곳에 합격을 낙점해놓은 천재 루크. 오 이 친구가 이제 학교에 가서 랩에서 뭔가 어마어마한 걸 만들어내나? 하니 웬걸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고 본인이 남들의 실험동물이 되어버린다. 초능력을 가진 어린이들을 모아놓은 인스티튜트의 새로운 실험체로.
그렇게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초능력은 보통(!)인 정도라 고통스러운 실험을 당하는 루크. 루크의 모습을 보며 다른 어린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며 내가 다 괴로워진다. 뛰어난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앞서의 루크의 모습과 인스티튜트에 와서 애매한 능력치라 여겨져 과도하게 실험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소설이라 해도 고통스럽다. 이 모습은 SAT 시험장에서 루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틀리는 (아마도 SAT 칠 연령인) 학생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뛰어난 친구들은 데리고 가고, 애매한 친구들은 소모품으로 쓰다 버린다. 현실을 대비시켰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다.
'앞 건물' 의 연구소에서는 애들에게 주사를 놓으며 계속 점이 안 보이냐! 하며 집착하는데 작품에선 그걸 슈타지 라이트 실험이라고 한다.
현실세계에서 슈타지란 이름은 통일 전 동독의 비밀경찰/첩보기관을 말하며 그들의 업적..으로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수용소로 이름이 높았다. 물론 안기부나 북한보다는 나았다곤 하는데.. 이것두라 매운 맛 좀 보여줄까?;;; ㅠㅠㅠㅠ 그런 성격이 이 아이들이 가둬진 곳, 인스티튜트의 분위기나 목표, 성격을 상상하게 한다.
슈타지 라이트 실험을 통해 초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 목표인 줄 알았더니 앞 건물에서의 생활의 일차적 목표는 뒤 건물에서의 생활: 아이들의 초능력 무기화 를 대비시키는 것이라 하니 이것은 2권에서 회수될 중요한 떡밥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망가질 때까지 쓰이다가 어떻게 되는걸까?
명석을 넘어선 천재, 머리가 좋은 만큼 세상과 적절한 상호작용을 수행하던 착한 아이 루크는 상황에 적응해 나간다. '안 좋은 쪽으로의 발전'으로.
'그래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라는 말을 입에 붙이다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은 여자 아이들의 심장에 불을 지르는 니키, 언제나 반항하느라 상처가 끊이지 않았고 뒷 건물로 끌려가는 순간까지 끝까지 저항하던 아이 니키를 생각하면서이다.
망설이다가 다크 웹 뒷문을 통해 부모님의 사망 사실을 뉴스로 확인하고, 현실에 발을 딛고, 호의로 도와준 내부자(이것도 할 말이 많은데 채무와 파산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할 길이나 법률이 있지만 드라마[나의 아저씨]에서도 그렇고 모르는 이는 끝까지 모르고 생의 의지를 잃을 정도로 고통받는다.) 에게 도움을 받아 탈출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과연 탈출에 성공한 루크와 듀프레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팀은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가.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듀프레이에서 모일 둘은. 루크는 친구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인스티튜트는 무너질 것인가? 세상이 악해서 아이도 낳지 않았다는 팀은 2권에서 다시 출근하여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초자연적 현상을 너무나 현실적인 요소와 맞물려 '있을 법한' 공포로 살려내는 것은 공포 소설에 반드시 요구되는 역량이라지만 스티븐 킹은 매우 탁월하다. 그가 그려내는 세상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라는 공포를 큰 가지로 하여 지금의 세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고발에 여러 가지로 뻗어 있다. 한 번 정신없이 읽다 보면 - 또 워낙 작가가 이야기꾼이다보니 온갖 단서를 주워담으며 읽다보면 어느새 1권이 끝나있다. 과연 이 단서들은 맥거핀으로 끝날 것인가 헨젤&그레텔의 조약돌일 것인가. 빵조각일 수도 있겠다. 다 까먹어버릴테니(...) 어서 2권을 읽어야겠다. 그 때까지는 다시 읽으며 내가 놓친 조약돌들을 주워봐야지. 단순히 공포소설로만 놓기엔 섬세하게 짜여진 요소요소가 여러 번 읽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