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조련사와의 하룻밤 - 어른들을 위한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
김도언 지음, 하재욱 그림 / 문학세계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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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처럼 성인들의 퇴화된 동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아름답고 판타지적인 내용일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라는 낯선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상의 권태와 비애, 무너진 성 윤리,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인 인간의 악마성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총 7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몇가지는 꽤 외설적이고 수위가 높다.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는 독자인 나조차도 약간의 죄의식을 가지게 한다.

가장 자극적인 이야기는 단연 '불결한 천국의 노래'였다. 이 동화는 1990년대 초,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누구나 동경하는 일본 공기업의 임원이었던 40대 독신여성이 매춘 행위를 하다가 상대 남자로부터 살해 행위를 당한 것이다. 사회적인 선망을 받던 부러울 것 없던 엘리트 여성이 반복적으로 매춘 행위를 즐겨왔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도 임원의 지위를 벗어나 일탈을 통해 세상을 조롱하는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공기업 임원이라는 세속적인 지위에서 밤에는 창녀라는 바닥의 지위로 추락하던 그녀의 짜릿한 모험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일탈이 주는 죄의식을 떨쳐내지는 못할것 같다.

저자는 '우리는 성과 폭력 앞에서 얼마나 정직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나도 우리 모두가 사회적인 시선과 법의 심판 아래에서 어느정도 본능을 통제하고 봉인하며 살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성과 폭력 앞에서 솔직한 사람이 과연 비난받아 마땅한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여교사가 제자를 성추행하는 내용의 '언제나 전야의 밤'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둘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미성년자'라는 법의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법의 자의성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법으로 윤리를 규정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레옹>이 내 인생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여교사를 비난하는 쪽이 더 마음이 편하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공감하기 힘든 내용도 있던건 사실이었지만 분명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깃든 욕망과 공포를 극적으로 잘 표현해낸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동화라는 장르는 이미 존재했어도 그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김도언 저자가 전례없는 독창성을 자부한다고 한다. 그만큼 내게도 신선하고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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