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 이근아 그림 충전 에세이
이근아 지음 / 명진서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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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회에 가면 도슨트도 마다하고 한 그림당 5-10분씩 한참을 들여다 보는 내게 처음 접해본 그림에세이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이 그림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의도로 그렸을까' 같은 화가의 입장에서 감상하는 방식이 익숙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니 그림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것도 의미있는 해석이 되겠구나 싶었다. 저자는 마음이 우울한 날, 그림 앞에서 가만히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말이 없는 그림은 충족되지 않는 사람의 위로를 대신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바라보다보면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었다. 저자는 힘들었던 지난날의 이야기와 함께 그림들을 세심하게 엮어냈다.

나는 저자가 큐레이터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바로 그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내가 졸업하던 얼마 전까지도 우리학교의 큐레이터학과는 최고의 인기학과였다. 신청만 하면 복수전공을 할 수 있던 여느 전공과 달리, 큐레이터학과는 학점이 4.0이 넘어도 심층면접을 통과해야만 복수전공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률의 이면에는 박사학위까지 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마저도 취업자리가 바늘구멍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책을 읽으며 그 얘기가 결코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있어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고용 환경은 절대 육아와 병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와서인지 더욱 씁쓸한 공감이 간다. 어렵사리 얻은 재취업의 기회에도 결국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현실이 남일같지 않다. 저자에게는 그 일자리가 경력 단절로 내려앉은 자존감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 또한 취업 준비를 하며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바닥을 치던 때가 있었다. 일해본 적 없는 취준생들도 이리 우울한데, 열심히 일하다가도 결혼과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터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의 그 좌절감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출산휴가를 받고 유아휴직을 쓸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그 권리를 보장받기도 힘든 우리나라의 근로 환경에 다시한번 한숨이 나온다.

언어의 온도에 관한 구절도 와닿는다. 우리는 타인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나는 필터링 없이 함부로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한다. 생각이 짧아서 그랬든 의도적으로 그랬든 중요치 않다. 말은 내가 언제 가해자가 될 지 모르는 독이 든 무기같다. 흘려보내지 못한 차가운 말은 마음 속에 남아 미움으로 번진다.

평범한 일상에도 마음이 지치는 날들이 많다. 그림에 내 마음을 투영해서 본다면 그림 속 모델이 어느새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위로의 그림들과 그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다 써버린 마음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그랬듯 나만의 미술관에 걸어놓을 수 있는 그림을 발견하고 나면, 날카로워진 마음이 어느새 둥글어져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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