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 애인, 아내, 엄마딸 그리고 나의 이야기
김진희 지음 / 이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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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삶이란 스스로 웃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겨우 깨닫고', '고개를 들어 대화를 청하기 시작한' 책이라 하여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치르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한 조곤조곤한 마음글과 따뜻한 그림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결론은, 책의 맨 뒷장까지 다 읽었지만 축축 쳐지는 푸념과 하소연의 연속이었다.

 

책의 중간쯤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결혼전엔 잘 나갔다, 이해가 안되는 남편을 만나서 힘들다, 남편도 힘들고 시댁도 힘들다 이런 푸념은 중간까지만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생활 속에서 어떤어떤 기회가 오고 용기를 내어 이만큼 행복해졌고 남편과도 회복이 되었다, 행복할 준비가 되었다, 여러분께도 행복을 나눠드리고 싶다, 어떠냐, 이 책을 다 읽어가니 조금이라도 행복해졌냐 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어쩜 그리 처음부터 끝까지 하소연과, 그럼에도 이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어느 정도 '체념'하니 좀 나아졌다는 그런 말.

 

그리고 이해 안가는 또 한가지는,

전혀, 글의 문맥과 맞지 않는 생뚱맞은 그림들이었다.

그림 옆의 설명은 어떻게어떻게 해서 본문과 맞춰놨지만, 그래서 말이 안맞고 안통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결론은, 글과 그림 모두 실망.

나는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어느 여자에게도 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책 한권을 읽었으니 좋은 표현이다 싶은 것 몇 군데를 적는다.

 

.

결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새로운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결국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도록 용기를 준다.

 

.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가장 유명한 부분처럼,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다. 한때 운명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내가 원했던 사람이 아닐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때는 내가 그 사람을 원했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내려 결혼이라는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

윤이 나는 새 숟가락 두 개만이 신혼집 살림의 전부는 아니다. 각자 들고 온 두 권의 낡은 앨범과 그 속에 들어있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닌 사연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부터 진정한 세간 장만의 시작이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상대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습관과 상처의 골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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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어차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물줄기 같은 감정의 반복 속에서 인연의 겹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괜히 복잡해서 싫었던 표현>

 

삶이란 공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쌓이는 생활의 무한한 층임을 우리 부부의 인연 앞에서 문득 깨닫는다.

 

 

맨발에 신고 나온 구두의 딱딱한 가죽은 자라는 이가 간지러워 무엇이든 긁어야 하는 생쥐처럼 걸음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살갗을 벗기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인간적인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비 오는 날 기꺼이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자가 다시 우산을 쓰고 비에 약간 젖은 머리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석류처럼 빨간 불씨가 수증기 가득한 대기속으로 하얀 연기구름을 피워 올린다.

 

 

…곰삭아 깊숙이 파인 속에서 꺼낸 눈물을 흘릴 때…

 

 

그러나 아무리 살가운 고부라 해도 피를 나눈 부모자식이 아닌지라 그동안 묵과한 진실의 세찬 매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좋은 부분이건 싫었던 표현이건 발췌하기 위해서 다시 책을 펼쳤는데, 다시 기분이 다운되어 여기까지만 하고 책을 덮는다.

 

결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새로운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결국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도록 용기를 준다.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가장 유명한 부분처럼,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다. 한때 운명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내가 원했던 사람이 아닐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때는 내가 그 사람을 원했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내려 결혼이라는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윤이 나는 새 숟가락 두 개만이 신혼집 살림의 전부는 아니다. 각자 들고 온 두 권의 낡은 앨범과 그 속에 들어있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닌 사연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부터 진정한 세간 장만의 시작이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상대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습관과 상처의 골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다.

부부란 어차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물줄기 같은 감정의 반복 속에서 인연의 겹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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