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자 속의 사나이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8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박현섭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안톤 체호프 출판사 문학동네의『상자 속의 사나이』를 읽었습니다.
읽게 된 동기는 여름방학 중반, 방학의 끝을 바라보던 무렵 저는 반복되는 학업의 루틴과 생산적이지 않은 생활로 지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아 계속 이렇게 방학을 날려도 되는걸까‘ 라는 식으로요.
그렇게 오랜만에 ‘눈이 확 떠지는 뭔가를 읽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서점에 들렀습니다(집에는 하루키 씨의 소설 몇권만 있었던 탓에...). 문학동네의 세계전집 코너를 살펴보던중 이 책의 제목이 저의 눈에 비쳤습니다. 『상자 속의 사나이』이 제목은 마치, 방학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저의 삶을 상자라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안톤 체호프의 『상자 속의 사나이』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구매했습니다. 책의 표4에 두 작품 모두 뛰어난 러시아 문학이라고 써있더군요(뭐 『롤리타』는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기도 했구요.).
집에 도착해 『상자 속의 사나이』를 펼쳐보는데 놀랐습니다. 중단편선인지 모르고 구매했거든요. 책의 표4에도 써져있었는데..., 참 바보 같네요. 그래도 딱히 상관없었습니다. 책의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전부 희극적인 동시에 비극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온갖 것들이 가득한 복주머니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은「아뉴타」, 「6호실」, 「상자 속의 사나이」, 「사랑에 관하여」, 「귀염둥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약혼녀」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제 마음을 끈 이야기인 「귀염둥이」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고선 살아갈수 없는 주인공인 올렌카는 처음엔 극단의 단장인 쿠킨을, 두번째엔 목재 창고를 관리하는 푸스토발로프를, 세번째엔 수의사 블라디미르, 네번째엔 수의사의 아들인 사샤와 사랑에 빠집니다. 놀라운 점은 매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때마다 올렌카는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사에 빠져들고 심지어 가치관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사람으로 이른바 변신을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세번째 연인은 블라디미르가 떠나자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올렌카는 아무런 의견을 가지지도 못하고 아무런 관심사도 가지지 못하며 어떤 열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뒤 수의사가 돌아오고 그의 아들인 사샤에게 빠진 올렌카는 또 다시 아이의 관심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사샤의 어머니가 아들을 멀리있는 하르키우로 언젠가 부를수도 있다는 생각에 올렌카는 불안해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의 끝에 또 다시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수도 있는 위태롭고 불안불안한 올렌카의 네번째 사랑을 보여주며, 독자에 따라 교활하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불쌍하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올렌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귀염둥이」뿐만 아니라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의 전반적인 공통점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평범한 인물과 일상적 상황이라는 점 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영웅이나 특별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현실에선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많지만, 체호프의 작품들은 모두 주변에서 볼수 있을 법한 혹은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어? 이 등장인물 그 사람이랑 비슷한데?‘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게다가 이야기의 상황들은 이 세상에 흔히 있을 법한 일상적인 상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번째 공통점은, 뚜렷한 결말 없이 끝난다는 점 입니다. 체호프의 소설들은 거의 대부분 소설의 결말 뒤에 앞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있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전에 막을 내려 독자가 이야기의 뒷부분을 궁금하게 하고 이야기를 상상하게 합니다. 저 또한 ‘이 주인공은 또 어떻게 될까?‘ 이런식으로 상상도 해봤구요. 아니면 인생이 불확실한 것 처럼, 체호프의 소설들 또한 불확실함의 여지를 남겨둔걸지도 모르겠네요. 흠, 또 아니면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체호프 본인 또한 불확실한 건지도요?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혹은 우리가 놈팡이들, 소송꾼들, 어리석고 게으른 여자들 틈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온갖 헛소리를 말하고 듣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상자 속의 사나이」이야기에 등장하는 인용구 입니다. 비좁은 도시와 서류 그리고 카드놀이, 전부 우리 현대인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것 들입니다. 이건 마치 체호프가 우리 현대인들은 상자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것 같네요. 정말로 저희들은 상자에서 살아가고 있는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