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수업 3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형수 작가님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몇 년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차라 올해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인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드문 케이스이긴 한데 김형수 작가님은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평론가이기도 하다. 세 영역을 허물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학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은 세 챕터로 나뉘어 문학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담론한다. 첫 챕터인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에서는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었고 두번째 챕터인 <이성의 제국을 탈출하는 언어들>에서는 현대시가 형성되는 경로와 치열한 시인들의 미학적 고투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세번째 챕터가 이 책의 제목인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제로 씌어졌는데 저자는 소설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말하는 것은 꽤 복잡한 인식의 층위를 필요로 하는 까닭에 앞의 두 챕터가 꼭 필요했다고 말한다.

사실 이 서평을 쓰면서 한학기 교수님 수업을 듣고 학점을 좌지우지할 과제를 쓰고 있는 심정이었다. 과제 내용은 이번 학기 수업을 어떤 깊이만큼 이해했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강의 내용 요약문이라고나 할까.

작가가 초대한 문학을 사유하는 세계는 스펙트럼이나 깊이에 있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문장은 반복해서 읽고, 좋은 내용은 곱씹해서 읽고, 일순간 막혔던 사유를 탁 트이게 하는 설명은 따로 필기해두고 읽었다.

이제부터 읽은 세 챕터에 대해 요약을 해볼까 한다.

챕터1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

이 챕터는 1997년 일본의 유명한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의 민족문학작가회의에 초청받아 했던 강연 "미(美)와 지배: '오리엔탈리즘'이후" 의 내용으로 운을 뗀다. 이 강연에서 열쇠라 할만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낱말에는 소위 작가의 존재이유, 즉 작가들은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문제 의식에 다가갈 비상구가 감춰져 있다고 짚어내는 작가님의 통찰력에 시작부터 압도되었다.

그렇게 오리엔탈리즘의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오리엔탈리즘의 정체와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오해인 "괄호로 묶어두기" 명제에 접근한다.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을 지적•도덕적으로 열등한 인간으로 간주한다는 것,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 지적•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갖는다는거예요. 자기보다 열등한 인간이라고 무시해 놓고 그러나 '신비하고 매혹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심각한 모순이 어디 있어요. (26페이지)

여기서 미적 태도에 관해 가장 투철한 고찰을 행한 칸트의 이론-(어떤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이제까지의 전통적 구별에 따라 인식적인 관심, 도덕적인 관심, 취향 판단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는 관심의 코드)을 인용하여 이같은 진•선•미는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개의 사유형식임을 설명한 뒤, 칸트는 여기에 우열의 순위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그것들이 성립되는 영역을 명확히 한 것에 비해 거기에 우열을 정하는 근대인들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이성을 중시하고, 선악의 문제는 소홀히 취급하며, 취향 판단은 아예 왜곡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서 인간은 적어도 세 개의 측면에서 반응하는데 그것들은 가끔 상반되는 태도를 만들어내기도 하다 보니 특정한 문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두 가지를 '괄호 묶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존재 자체를 바라볼 때는 모든 괄호를 풀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문학의 갈래에서 '괄호 묶기'의 오류나,한쪽으로 치우친 심미주의 등에 대해 언급하며 문학은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에 대해 작가가 던진 명제는 인상깊었다.

챕터2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

두번째 챕터는 위에서 한번 언급한대로 현대시가 형성되는 경로와 치열한 시인들의 미학적 고투 과정을 그려내는데 역시나 시작하는 문장이 흡인력 있다.

현대에는 예술정신이 충일할수록 사회적 교양과 충돌하고 자기의 시대상황과 불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마도 그 절정에 있는 것이 시일거예요. (72페이지)

왜 시인들이 사회적 교양과 충돌하고 시대상황과 불화하는 경향을 보이는지 그 이면에는 문학학도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들어봤을법한 '낯설게 하기'가 있다.

'낯설게 하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있지만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의 관성'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바로 이 오류를 깨뜨리는 것, 그래서 인간의 생명이 낡고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게 무한히 감각을 일깨우는 행위를 예술에서 '낯설게 하기'라고 합니다. 어떤 관성의 장막을 걷어내고 마치 세상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최초의 떨림을 되찾는 것처럼 실감을 일깨우는 일에 예술이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게 바로 '낯설게 하기'에요. (76)

근대에 들어서 이 '낯설게 하기'로 인해 거의 모든 창조 영역에서 시가 독보적인 권위를 얻게 된다고 한다. 이성을 숭배하며 살게 된 근대에 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체제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는 다른 형식의 사유체계가 얼마든지 작동하고 있으니까. 혼란시키지만 매혹시키는 것, 무언가 명료하지만 정신없이 빠져 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시라는 정의는 명쾌하기 그지없다.

현대시는 소통의 익숙함을 기피하기 위하여 사물이나 인간과 접촉하면서 얻은 현실감을 비의적으로 비틀고자 하기에, 시에 의해서 현실은 공간적•시각적•객관적 그리고 정신적 질서로부터 풀려나오게 되며 정상적인 세계관에 필수적인 구분들, 즉 미와추, 가까운과 멈, 빛과 그림자,고통과 기쁨, 지상과 천상 등의 선입견처럼 기정사실화된 구분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작가의 표현은 시의 존재이유와 시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상고해보게 했다.

시는 인간을 문명이나 국가체제의 부속품으로 대하는 태도에 저항하고 이미 답습한 문명화 과정을 능히 역행할 수 있다는 사유는 시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시의 생존법임을 시사하는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챕터3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챕터에서 저자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소설에 대해 쓴 얇은 책 [소설의 기술]을 인용하고 해석하며 소설가의 존재이유에 접근한다.

1935년도에 유럽에서 제출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에드문트 후세를(독일 철학자, 1859-1938)이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는 유럽의 정신사를 끌고 온 근본 동력을 '세계를 풀어야 의문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보았다한다. 이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덧붙여 '세계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러저러한 실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앎에의 열정이 사람들을 사로잡았기'때문이었다'고 했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세계를 단순히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축소'시키고 그 결과 '대지의 지평으로부터 삶의 구체적인 세계를 제거해버린'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근세 정신사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데 '과학의 도약은 사람들을 전문화된 분야들의 동굴로 몰아넣었다". (131-135페이지 참조)

여기서 하이데거'존재의 망각'이라는 개념을 들고 등장한다.

지식에 있어 진보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에서 세계와 자기 자신의 총체성을 잃어버렸고,이리하여 후세를의 제자인 하이데거가 '존재의 망각'이라는, 멋지면서도 거의 마술적인 표현으로 부른 것 속으로 함몰되었다. (136페이지 )

'존재의 망각' 증세로 인해 아비규환을 맞는 세계, 이걸 '인문학의 위기'라고 정의한다.밀란 쿤데라에 의하면 이 위기 속에서 예술은 '존재의 개발'이라는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는데,그러니까 근세의 과학이 낳은 '존재의 망각'현상을 예술이 뒤집고 있었다는 얘기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과 과학이 인간의 존재를 망각한 것이 사실이라면,세르반테스와 더불어 유럽의 위대한 예술이 이룩해낸 것이 이 망각된 존재의 개발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139페이지)

밀란 쿤데라가 유럽의 정신사에서 소설의 지위를 이렇게 평가한 것이 자기가 하는 일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소설가의 독선이 아닐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로런스(20세기 영문학 거장,1885-1930) 가 언급한 말이 있다. 그것은 영혼,정신, 신체,두뇌,의식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존엄을 구성하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들이 맞지만 그 낱낱의 중요성보다 총체로서의 '살아 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바로 그걸 그리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소설가다. 그리고 소설가인 까닭에 내가 성자,과학자,철학자, 시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는 살아있는 인간의 각기 다른 부분의 대가들이지만 그 전체를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로런스, [장편소설이 중요한 이유]중. (140페이지)

이쯤되면 소설가가 할 일의 윤곽이 서서히 잡힐텐데 사회가 '존재의 망각'에 빠지고 전문성과 부분에 몰두하며 융합, 통섭, 복합 이런 것들로 땜질하려고 애를 쓸 때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는 문명의 질주를 방해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명징하게 대답한다. (end)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