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 지나친 관용으로 균형 잃은 교육을 지금 다시 설계하라
베른하르트 부엡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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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봤던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그려낸 만화 세 컷이 기억난다.

첫 컷은 엄마가 갓 걸음마를 뗀 아기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끌어 주는 그림이었고,

두번째 컷은 엄마가 청소년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그림이었으며,

마지막 컷은 엄마가 젊은이가 된 아이를 떠나보내며 뒤에서 따뜻한 미소로 배웅하는 그림이었다.

이끌어주고,

동행하고,

떠나보내기 혹은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기

이것이 큰 그림으로 봤을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자, 부모의 역할이자,양육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끌어줄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결코 단순하지도,쉽지도 않다.

세상 모든 전문적인 직업은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자격이 돼야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자식에게 전문적인 양육자가 되어야 할 엄마는 정작 엄마 공부를 미처 시작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한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엄마가 된다.

먼저 자격을 부여받고 그 다음 아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내 아이만을 위한 맞춤형 프로양육자,공급자,지지자,헬퍼가 되어가라는 신의 계시일까.


그래서 딸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나는 매달 육아도서 세 권씩 읽으며 자녀교육을 공부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보면 주로 애착형성, 자존감 키워주기,두뇌발달돕기, 창의력 키워주기,상처받지 않는 대화법 등등 마시멜로처럼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것들이었다. 당연히 이런 주제들은 아이 양육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들이며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부모님은 자식 교육을 농사에 비교했는데(윗 세대분들 사이에서 자식 농사라는 말이 나오는게 같은 맥락인 듯하다) 거름을 주고 가뭄 때 물을 잘 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충이 농작물을 갉아먹지 못하게 보호하고 기음을 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잡풀이라고 하는 것은 며칠만 쉬면 또 자라는 것이라 내 할아버지는 늘 볏짚모자를 쓰고 뒷짐 짐 손에 호미를 든 채 밭고랑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잡풀을 제거하곤 했다.

애착형성, 자존감 키워주기, 정서케어하기 등등은 내가 느꼈을 때 자식농사로 비유하자면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는 일이었다. 그럼 어떻게 아이의

마음 가운데 있는 잡풀을 제거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찾았다.

베른하르트 부엡은 1938년에 태어나 30년 동안 독일 살렘 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그러니까 이 책은 2000년대 전후로 씌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독일 사회에서도 그때 당시 이 책이 출간과 동시에 커다란 논쟁을 일으켰다고 하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육 분야에서 주류에 속하는 이론서는 아니었나보다.

편견을 갖지 않고 읽었다.

우선 나 스스로 자녀를 엄하게 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언제(when)와 어떻게(how)를 몰랐기에 목마름으로 읽었다.

우선, 부엡이 말하는 ‘엄하게 키우기’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보자.

부엡은 “엄격하게 가르치라!”고 말합니다.이때의 엄격함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소리를 지르고,강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엡은 엄격함을 이치에 대한 순종, 질서에 대한 존중으로 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이 세상에 있는 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아이들를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진리 앞에서 겸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칠 때,아이들이 삶의 질서를 세우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고 말합니다.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11페이지

읽다보니 부엡이 주장하는 ‘엄하게 가르치기’는 원칙과 관용 사이, 훈련과 사랑 사이, 일관성과 배려 사이,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균형을 맞추는게 제일 힘들다. 조금만 방심하면 좌로든 우로든 치우치기 마련이니까.

아이가 같은 잘못을 반복할 때 기꺼이 지혜롭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고, 매일 해야 하는 청소나 숙제처럼 반복되는 노동이나 작은 의무에 충실하지 못할 때 훈련을 시키며, 말아톤이든 서바이벌 야영이든 (아이의 수용도에 맞춰) 의지와 자립심이 필요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안 것만으로 ‘엄하게 가르치기’에 대한 이해의 윤곽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특별히 기억났던 부분은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 대한 부엡의 주장이었는데, 선생님이 부족함이나 미흡한 점이 있어도 교사이기에 그의 권위에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권위가 남용되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권위가 부정적으로 인식된 것은 안타까우나, 올바른 권위는 질서요, 안전감이라고 한다.

사랑으로 사용한 힘은 권위입니다.

........

정당하게 사용된 힘, 즉 권위는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를 만듭니다. 오히려 권위의 결핍이 두려움과 불안을 낳고 삶의 방향을 잃게 합니다.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52페이지

대신 선생님은 사랑과 정성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품어야 할 때와 엄하게 가르쳐야 할 때를 아는 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지만 이상적인 주장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가 깨진 사회에서는 권위를 회복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부엡은 엄하게 키우지 않을 경우 아이가 흔히 겪게 될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노력은 하지 않고, 재미있는 자극이나 받고 싶어 하고, 자기연민이 강하며, 그칠줄 모르는 소비 욕구를 지닌 것이 요즘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68페이지

지루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 꾸준함이나, 스스로의 힘으로 실패를 딛고 노력하는 일이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려면 아이들이 이것들의 참된 가치를 깨닫도록 ‘행복으로 몰아붙여야’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심리학이 교육학에 과하게 개입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나,정당한 벌은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견해, 그리고 아이에게 공동체 교육을 필수로 받게 해야 한다는 뼈있는 주장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노력이 습관이 되도록, 참된 행복을 추구하며 살수 있도록, 도덕적이 되도록 농부가 잡초를 제거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완고함이나 어리석음에 엄하게 대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책에서 지적한대로 한없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관성 있게,먼저 본이 되는 바른 권위자의 모습으로 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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