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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오해 알베르 카뮈 전집 1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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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내가 널 오해했나봐."

우린 보통 이런 의미에서 "오해"라는 단어를 쓴다.

남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러나 이 이면에는, 남이 선의로 한 말을 악의로 받아들였다 할 경우, 선의와 악의의 차이가 뜻하는 것은, 서로의 의식 자체가 같은 곳에 있지 않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얼핏보기에 이 작품은 , 마르타(여동생), 어머니, 얀(오빠), 마리아(얀의 부인)라는 주인공들이, 서로 오해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다시 찬찬히 갈등 구조를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오해란, <공동의 무엇이 부재함>을 뜻하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오해를 통해, 까뮈는 "진정 터무니없음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 중남부의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고원지대의 여관 주인 부부가 여행객들을 살해하고 돈을 뺏은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붉은 여관이라고...오베흐주 흐쥬?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는 일종의 설화 같은 것이라고 한다.)

1 막: 공동의 인식이 부재하는 두 쪽 간의 대면

엄마와 마르타가 손님으로 온 얀(어릴 때 헤어진 아들)을 죽이고 한탕하자고 할 때,

마르타: 아! 어머니!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하늘 끝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땅을 떠날 수 있게 되면, 이 여인숙도, 일년 내내 비만 내리는 이 마을도 버리고, 이 그늘진 고장도 잊어버리고, 마침내 그토록 꿈에 그렸던 그 바다를 눈 앞에 대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어머니도 저의 웃음짓는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르타는 현실에 반항하며 인생역전의 욕망을 위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 살인이 정당한 동기가 되지 못함을, 터무니없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스스로를 오해하고 있다)

어머니:(중략)그러나 죄짓는 일이 두 번째면 그때부턴 벌써 습관이 되는 거란다. 처음 짓는 죄란 시작도 아냐. 그것은 그것으로 끝인 거다. 그런데 설령 기회가 아주 드물었다 해도, 그래서 여러 해에 걸쳐서 저지른 것이라 해도, 기억이라는 것이 습관을 단단하게 만드는 거다. 그래 맞아, 내가 그 남자를 응대한 것도, 그 남자(아들, 얀)가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가 습관이야.(살인의 동기가 습관 때문이라는...아주 무시무시한 살인의 이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습관으로 인한 살인"이라는 진실을 말해준다.)

얀: ...그 다음일은 신께 맡기면 돼요. 그러지만 내가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당신(부인, 마리아)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신도 알고 계세요. 다만 사람은 유배나 망각 속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거요.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소. 나는 내 고장을 되찾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소.(고향을 떠나 태양이 빛나는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고향에 남겨진 가족 생각에 마르타와 어머니를 찾아 유럽으로 넘어와서, 이들에게 "저에요" 바로 말하지 않고, 어떤 말을 통해 자신이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물. 얀이 가족을 찾아 떠나온 그곳은, 바로 동생 마르타가 살인을 통해 차지한 돈으로 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이상적인 곳이다.)

이렇게 양쪽은 각자의 오해 속에 빠져서 대면하게 되는데...

2막: 공동 언어의 부재

얀: 난 아직 그 말 못 찾았어. 근데 괜찮아. 그렇게 급하지 않아. 나는 이 집에 재산을 가져다주러 온 거야. 가능하다면 행복도 말야. 내가 아버지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두 모녀에게 내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근데 말처럼 자기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어떤 이방인의 아들 행세를 하는 데에도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마리아: 당신은 이방인의 아들이 아니라 이 집의 아들인데 왜 본인이 아닌 행세를 하려해요.

 

마르타: 설령 아들이 이 집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아무 손님이나 이 집에서 확실히 받는 것을 받을 거에요. 말하자면 호의적인 무관심 말이에요.(캬~!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 왜 굳이 여관을 설정하고,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게 했는지 짐작가능하다.)

 

얀: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한 분은(어머니) 이해로, 다른 한 분은(마르타) 무관심으로 대했다는 거죠?

마르타: 찾아오신 손님으로서야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얀: 그렇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겠군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 집에서는 이야기도 사람들도 모두 이상하게만 느껴지는데, 그 점 알고 계신가요? 이 집은 정말 이상해요.

마르타: 그건 손님께서 이상하게 행동하시니까 그렇겠죠.

 

어쩜....고독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지! 고독한 두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나눌 게 없었다. "고독이란, 서로간에 아무런 나누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3막: 공동 믿음의 부재

얀: 그래도 나는 조금은 돌아온 자식을 위한 만찬을 기다렸는데, 세상에, 돈 받고 맥주를 주는 거야.

이 말을 한 그날 저녁, 결국 얀은 독을 탄 차를 마시고 죽는다. 그러나 얀이 자신의 아들이자 오빠임을 안고 난뒤, 공모자였던 엄마와 딸은 그 공동의 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어머니: 그러나 지금에 와서 깨달았다마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할 것 없는 이 땅 위에서도 우리에겐 우리의 확신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듯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지금 나의 확신이다.

마르타: 불의에 고통받고 있는데 누구도 나를 옳게 봐주진 않았어. 나는 무릎꿇지 않을거야. 천만에. 이 땅 윙에서 내 자리는 박탈당한 채, 어머니로부터는 버림받은 채, 내 죄들 한 가운데 홀로 남은 채, 나는 이 세계를 떠난 거야. 하지만 아무런 화해없이 이 세상을 떠날거야.

이제...마르타는 오빠의 죽음과 어머니와의 공모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도 신밖에는 찾을 게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르타가 신을 찾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것은 결국 "사람들이 신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 세계"를 증오한다는 말이 된다. 남편 얀의 죽음을 알게된 마리아와 마르타의 마지막 대화,

마리아: 내게 손대지 말아요. 당신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우리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마르타: 그러지 않아도 내버려두려 해요. 그러는 것이 나에게도 마음 편하니까요. 당신의 그 사랑이니 눈물이니 하는 것 견디기 힘드네요. 그러나 당신이 아직도 내가 옳다, 사랑이란 헛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고이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도록 놓아두고 죽을 수는 없어요. 왜냐고요? 이제야 우리는 질서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니까요. 이 점을 수긍하셔야 될 거에요.

마리아: 무슨 질서요?

마르타: 누구도 결코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질서요.

사람은 물론 신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질서, 즉 아무도 인정받지 못하는 곳, 이런 세계는 공동의 믿음은 더 이상 없는 곳이란 뜻이다. 마리아같은 사람에게 공동의 믿음, 공동의 집은 신이지만, 마르타같은 사람에게는, 공동의 믿음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은 결국 무서운 고독 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집은 곧 "죽음"이다.

인간의 고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진실이지만, 터무니없다. 아무도 이를 그냥 순순히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이 고독을 극복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각자의 고독에 대해서, 외로움에 대해서 반항은 해야 함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인간이란 고독하다는 진실을 용납할 수 없으니, 반항은 해야 한다. 정말로 고독해서 반항을 하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에게 어떤 지평이 열릴지는 모르니까. 최대한의 반항을 통해 인간사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해야하는 것이고...그냥 무책임하게, 가식적으로 신을 통해 그 고독을 해결하려 하지도 말고...

고독이란, 서로간에 아무런 나눔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우리는 고독을 통해 생각을 해야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고독의 무서움을 절감했을 때, "고독"만이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구나 했을 때, 남의 고독도 알아보고, 그 고독 속에서 자신의 고독과 만나려 하고...

결국 고독을 이해한다는 것이, 사람 사이의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굉장하다...!

인물간에 주고 받는 대사 하나하나가,

굉장하다.

이 담에 학위마치면, 까뮈 전집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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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 [초특가판] 아웃케이스 없음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미후네 도시로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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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생문>과 <대숲에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명성만큼 굉장하다. 아쿠타가와 작품을 먼저 읽고 봤는데,

감독 자체가 작품을 잘 해석한다는 느낌을 줘서

소장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은 항상 자기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인간사의 진실을,

어쩜 이렇게 잘 보여주고 있을까?

홍상수의 <오!수정>이 이런 시각에서 만든 영화라고 하던데,

비할 바도 아니더구만.

요즘 나오는 한국의 다장르 영화(코믹,멜로,액션 종합)는 새로움을 시도함에도

진부하게 느껴지고, 이 영화는 그렇게 오래되고 흑백 영화인데도, 왜 이렇게 새롭게 느껴질까?

옛 것 그대로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 이런 영화가 명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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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전편 보급판 박스세트 (6disc) - 할인행사
DVD 애니 (DVD Ani)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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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극장판으로 나온 VOD를 통해서였다. 그냥...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아닐까 했었는데...어찌나 조그만 친구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철학적인지...^^

그래서 친구 생일선물로 좀 더 많은 에피소드가 담긴 걸 보내주었다. 극장판은 한정된 시간내에 상영되는 거라 그렇게 엑기스를 압축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망스럽진 않겠지...?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못해서 별은 중간인 3개만.(극장판은 4개반 정도 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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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략 고등 HSK 적중 300제 (책 + 테이프 1 + 구술.작문 비법노트) - 최신기출유형, HSK 막판뒤집기
란샘 지음 / JRC에듀케이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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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이든, 실제 자신의 업무에 맞는 외국어 실력과 시험 점수는 별개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중국진출 사장님들은 HSK가 최대 6급이지만, 중국 공무원 및 사업가들과 계약서 잘 써가며, 직원 잘 다뤄가며, 그렇게 돈을 버시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소설이나 신문을 척척 잘 읽어내려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험"이라는 부담감과 익숙치 않은 문제유형에 당황할 수 있다. 이 책은 HSK의 시험유형(특히 구술과 작문이 있는 고등)과 풀이 접근 방식을 파악하고자 할 때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시험"이라는 것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외국어 활용도와 달리, 답을 찾는 정확한 근거와 지식을 배경으로 해야함을 상정하고 있기에, 아무래도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 학습을 동원해야 하지만, 그 노력의 방향을 대충 그려주기에는 무리가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왕에 책도 판매하는데, JRC에서 책 구입자에게는 동영상 강의를 쬐금 더 할인해주는 방식을 취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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