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기억...말하자면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하게 되고 그들의 존재에 대해 집중하는 과정이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잠시 한 것 같다. 기억을 잃은 이 남자를 통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많은 이들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어린 나를 안고 놀이터에서 사진을 찍은 누나는 누구이며 난 왜 거기에 있었던 걸까...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조각을 맞춰보고 잘 안 될때는 편집과 각색을 해서 그때의 기분을 추측하며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다시 느껴보는 것도...몰락해 가면서도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게 기억되고 있는 사람.......고맙고 기억에 남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 비록 내게는 잊혀진 이들도 각자의 심오하고 고귀한 인생의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인생의 괘도 가운데 순간이지만 만남이 있었고... 그것이 이토록 소중하게 생각되다니... 이것이 문학의 힘인가...예상은 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휩쓸어 버리는 진실의 폭압에 한동안 먹먹한 기분을 안고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그의 목소리는 자학이 되어 다시 들렸고...그러자 슬펐고...내가 너무 싫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소라, 나나, 나기.....세 사람의 이야기...공룡의 멸종이 천만년에 걸쳐 멸종에 이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단번에 망하는 게 좋아? 아니.그럼 길게 망해가자.망해야 돼?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이 대화 내용이 머리에 오래 남았다. 왠지 이들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무심히 들어 읽게 된 책에서 재미와 공감과 감동을 받았다.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천천히 작가의 글을 음미하며 수많은 구절을 사진으로 찍고 노트에 옮겨 적고 낙서도 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정 작가님도 이런 경험이 있구나... 하며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이기주의를 향해 돌진하고 있던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던 세상을 낯설게 만들어주었다. 다음 읽을 책들은 `공부할 권리`에서 다뤘던 책들이 될 것 같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