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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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움’의 대명사 시장. 따뜻한 인심과 부대끼는 정이 가득한 그곳에 ‘폭력’이라는 단어도 공존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세상살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 안에는 사실 없는 게 없을 만큼 살아있는 것부터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것들까지 모든 게 들어있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며 필연적 폭력을 비껴가지 못한 그곳, 다종다양의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들끓게 하는 한 시장이 늙은 개 한 마리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목격된다.

 


축산물 구역과 수산물 구역을 오가며 매번 느끼는 것은 무엇으로 살든 서열을 나누고 생명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라는 사실이다. (p.66)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동물 보호에 앞장선 이력도 없지만, 한 번쯤은 공존과 책임에 대해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경희 작가가 애써 피하고 싶었던 곳에 진열되어 있던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모란시장》으로 돌아왔다. 늙은 점박이 개 ‘삽교’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장날 속 열띤 모란시장의 이면은 지독하게 비릿하다. 무서운 시장 길목의 미로 속을 아빠 명진의 보호를 몰래 벗어나 누비며 줄곧 가혹함을 마주하는 삽교.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기도 하는 것을 보며 복잡한 인간 삶을 보고 듣는다.

 


“이 세상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생명을 죽여서 고기를 먹어왔으니까요.” (p.199)

 


모란시장의 절대 권력자 대도축산의 박 사장과 그의 폭력을 감내하면서 잡혀온 개들을 묵묵하게 도축하는 경숙, 그런 경숙을 약봉지 가득한 방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삽교의 아빠 명진. 삽교와 따뜻한 말을 나누는 고씨 할머니와 오로지 장미꽃만 파는 능평꽃집 여자. 그리고 위험천만하지만 인간과 떨어진 자유를 택한 떠돌이 고양이 송이까지, 다양한 개성이 모란시장이라는 틀 안에서 공존한다. 시장이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듯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은 온정 있다가도 거칠고,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고독하다.

 

시장 내의 실세가 이끄는 대도축산만큼 생사의 갈림길 최전선에 잔혹하게 놓여있는 가게가 없다. 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경숙은 울부짖는 생명을 단번에 끊어버릴 만큼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고요해진 밤이면 아무도 없는 탄천에서 장미꽃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며 늘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런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개한테 하듯 죽도록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박 사장도, 죽기 전 마지막 소리를 토해내는 개들의 아우성도 아닌, 개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다. 꿋꿋하게 박 사장이 아닌 자신이 개들을 도축하고자 고집하는 건 어쩌면 영혼까지 으스러뜨리는 폭력의 잔혹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뭐 그깟 장미꽃이라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 너처럼 밥 처먹고 똥 싸는 사람만 생명인 줄 아냐! 네발 달린 짐승도 생명이 있고 이 작은 꽃에도 생명이 있단 말이다.” (p.82)

 


소설은 이토록 힘의 질서와 욕망으로 빚어낸 참혹한 현실 자체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연대를 통해 굳건해질 평화로운 생명공동체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난무하는 폭력을 돌아보게 만들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능평꽃집 여자의 질문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곱씹어 보게 한다. 책 《모란시장》이 담아낸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 도사린 현재의 삶 자체다.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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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부족한 당신에게 뇌과학을 처방합니다 - 수면에서 숙면으로 건너가는 시간
박솔 지음 / 궁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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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중’이 아닌 ‘하루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하는 일은 당연히 ‘잠자기’여야 합니다. (p.5)

 


지난 3월 18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편안한 잠, 건강한 마음, 행복한 세상’이라는 올해의 슬로건이 공개되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 자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언급해도 닳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에 숙면은 우리 모두에게 평생의 숙제처럼 항상 남아 있다.

 

기존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수면 문제를 앓고 있었지만, 근래에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건강한 잠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훨씬 증가했다. 지속되는 불안과 스트레스, 재택근무로 불규칙해진 수면 패턴 등이 불면증과 같은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직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TV 시리즈를 몰아보고 늦은 밤까지 SNS를 즐기는 등 오히려 숙면을 등한시하면서, 다음 날 개운치 못한 아침의 피로감에 또다시 후회를 거듭할 뿐이다.

 


잠들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신체 기관은 눈동자도, 다른 어떤 기관도 아닌 뇌다. (p.19)

 


박솔 작가가 2015년부터 네이버 캐스트 ‘생물 산책’에 연재한 칼럼 <잠의 과학>을 모아 다듬은 책 《잠이 부족한 당신에게 뇌과학을 처방합니다》가 시의성 있게 출간되었다. 변화하는 잠의 단계부터 여러 가지의 수면 장애, 꿈, 낮잠 활용법, 더 나아가 동식물의 잠에 대한 정보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잠’과 우리 ‘뇌’의 기능을 관련시켜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가위눌림은 어떻게 발생할까?’,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건 게으른 탓?’, ‘잠이 안 올 때는 눈만 감고 있어도 될까?’와 같이 평소 잠을 자면서 느꼈던 궁금증들도 다루고 있기에 묵혀둔 호기심이 속 시원히 해소되는 경험도 맛볼 수 있다.

 

충분한 잠을 이루지 못해 생기는 피로와 각종 문제들은 신체와 정신적인 모든 면에서 악영향을 미친다. 앞서 밝힌 문제들과 더불어 잠에 대한 다양한 사실과 정보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라면 소홀히 여겼던 자신의 수면을 위해 확실한 뇌과학을 처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잠이 부족한 것이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 밤이 되어도 환하게 불이 켜진 창문과 거리가 익숙하고, 하루 이틀 정도 밤새우는 것은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 시대. 그러나 제때 충분한 잠을 자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p.48)

 


해가 지고 밤이 오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뒤척이고, 새벽을 지새우고, 별안간 깬 잠에 못다 이룬 수면을 떠나보낼 것이다. 오늘도 잠 못 이루는 현대인들이라면, 늘 잠이 부족해 수면이 아닌 숙면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뇌과학이 초대하는 잠의 세계에 한 번쯤 주목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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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박애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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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이에요. 우주선을 조종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나이죠. 배홍련이라고 해요.” (p.227)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착하고 도덕적이고 효심 지극한 주인공들을 통해 늘 마지막엔 교훈을 빼놓지 않았던 고전 동화들. 입에서 입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운을 떼며 전해주곤 했던 추억의 이야기들이 SF와 만나 파격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곧장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도 과연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일까.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 바보야. 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하라는 거 다 하면서는 절대 살아남지 못해. 요령껏 해, 알겠지?” (p.9)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는 박애진, 임태운, 김이환, 정명섭, 그리고 김성희까지 5명의 작가가 각각 ‘심청전’, ‘별주부전’, ‘해님 달님’, ‘장화홍련전’, ‘흥부와 놀부’를 맡아 새롭게 써 내려간 SF 앤솔러지 작품이다.

 

인당수에 뛰어든 재능 있는 기술자 심청이(박애진, <깊고 푸른>), 신선한 간을 배달하기 위해 육지로 간 안드로이드와 클론의 만남(임태운,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해가 뜨지 않는 ‘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녀와 소년, 호랑이 외계인의 모험(김이환, <밤의 도시>), 우주비행사 홍련이 계모의 계략으로 우주에서 실종된 언니 장화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정명섭, <부활 행성>), ‘흥부의 과학‘으로 인해 벌어지는 동생 흥부와 형 놀부의 형제 싸움(김성희, <흥부는 답을 알고 있다>)까지. 차별과 시대적 한계로 이뤄질 수 없었던 당대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전해져 온 5가지 고전들이, 현재로선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기술로 풀어나가는 SF 형식으로 탈바꿈되면서 더욱 신선해졌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고전과 SF와의 조합은 기존 이야기들의 세계관을 훨씬 다채롭게 확장시켰다. 더욱이 작가들만의 개성 넘치는 해석으로 그려진 미래 세상은 기존의 고전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동화 속 그림들과 함께 페이지를 넘기며 읽던 어릴 적 추억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성인이 된 현재 이번 작품을 통해 상상 속 호기심이 충분히 자극될 수 있으리라 본다.

 


“원하는 게 있으면 늘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p.124)

 


특히 단연코 돋보이는 점은 캐릭터들에게 일어난 색다른 변화다. 고전 속에서 항상 착하기만 했던 수동적인 인물들이 이번 SF 속에서는 스스로가 먼저 앞장서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주체적인 인물들로 변신했다. 더 이상은 신분이 낮아서, 가난해서, 여성이라서, 착해서 당하지만은 않는 주인공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통해 묵은 교훈을 뛰어넘는 통쾌함과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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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일한다는 것 -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최명화의 가장 현실적인 조언
최명화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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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오늘의 신기술은 내일이면 어느새 구식으로 밀려있고, 새로운 유행, 업그레이드된 플랫폼 등은 눈만 뜨면 등장한다. 성장이 가속화된 만큼 기회와 도전의 가능성도 폭넓어졌다. 그런데, 동시에 불안하다. 조금만 한눈팔면 순식간에 뒤처질 것만 같고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이 세상 이면에 자욱이 깔린 느낌이다. 도태되지 않고자 누구나 열심히 달려가는 현재, 우리들은 왜 줄곧 내면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증명되는 존재가 아닌 표현하는 존재다. (p.7)

 


책 《나답게 일한다는 것》은 이렇듯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있다. ‘대기업 임원 3관왕’, ‘최초·최연소 여성 임원’, ‘상위 1% 파워 전략가’ 등의 수식어를 가진 27년 차 마케터 저자 최명화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표현하고 전달함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중심에는 가장 핵심인 ‘나다움’이 우선적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결국 내면의 불안감이 왜 지속되는가에 대한 해답은 제대로 통찰되지 못한 ‘나다움’이 줄곧 흔들린 것에 있었던 것이다.

 

1장 ‘나다움에서 답을 찾아라’부터 시작해 2장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성공 법칙’, 3장 ‘나를 지키면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리고 4장 ‘나라는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10가지 전술’까지. 페이지를 넘기며 한 단계씩 거치다 보면 스스로를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나다움’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방황에서 벗어나 확장된 나다움으로 인생의 성공적인 전략을 세우고자 하는 청년층에게는 이 책이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본다.

 


새로움을 경험하고 성공과 실패, 감탄과 좌절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나다움은 선명해진다. (p.47)

 


모두가 모든 영역에서 고유하게 우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다움’은 개인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저자의 조언처럼 우선 스스로의 호흡에 확신을 갖고 그 속도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알아가 보자. 남들 다 하는 걸 놓치지 않고 따라 해보며 나도 할 수 있음을 억지로 증명하기보다, 자신만이 가진 유일한 가치를 찾고 인정하며 전략적으로 길을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차별화된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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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E. M. 리피 지음, 송예슬 옮김 / 달로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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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타인의 시선이 우리 몸에 대한 자기관리의 기준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누구나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 내에서는 깨끗한 피부, 뚜렷한 윤곽과 몸매 등을 위해 필터와 보정까지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젠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까지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 몸을 향한 자신의 시선도 모나기 쉬워졌다. 아무 탈 없는 평범한 스스로의 몸도 자기관리를 자랑하고 보여주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선 파괴적인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E. M. 리피의 장편소설 《스킨》의 ‘한 사람의 평생의 기록을 담은 일지’라는 소개에서도 그렇듯, 인간의 몸은 개인마다 다 개성을 지니고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내 몸은 통통하다. 죄책감에 어쩔 줄 모르는 몸뚱어리. 무력한 나를 내가 지켜본다. 자기혐오와 설탕 덩어리로 가득 찬 공이 되어, 내가 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다." (p.59)

 


데뷔 소설 《레드 더트》로 아이리시 북 어워드와 루니 아이리시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이번 신작 《스킨》에서 폭식으로 인해 자기혐오에 가득 찬 주인공 나탈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하면 인생을 달리 보게 된다는 말에 훌쩍 떠난 나탈리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뜨거운 날씨와 모기, 그리고 퉁퉁한 자신의 몸에 어김없이 날아드는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하염없이 짓뭉개짐을 느낄 뿐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케이크를 입에 욱여넣는 나탈리는 충동적인 폭식이 아니면 그 공허함과 아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터질 듯한 배를 느끼고 나면 몰려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라는 악순환 속에서 이번에는 자신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파괴한다.

 

나탈리의 자존감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고통받지만, 발리에서부터 페루까지 이어지는 긴 여행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전 수영 선수, 술을 많이 마시는 룸메이트, 연애 없인 못 사는 친구 등 다양한 타인들을 마주하며 모두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감을 깨우친다. 그리고 저마다 나름의 대처법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몸에 향했던 자신의 모진 시선을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간다.

 


"이제 남은 건 코르셋처럼 복부를 감싼 붕대뿐이다. 내가 일어난다. 붕대를 끌러 빙빙 풀어낸다. 천천히, 그의 몸이 자유로워진다." (p.351)

 


스스로를 옥죄는 가장 가혹한 코르셋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이다. 그것을 풀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소설 속 나탈리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내 것으로 가꿔갈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한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함께 거치다 보면, 독자들은 그 시선 끝에 마침내 진짜 자기 사랑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조여 왔던 자신의 시선을 조금씩 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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