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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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글쓰기는 공들여 말하기, 읽기는 공들여 듣기"라는 표현으로 쓰기와 읽기에 대해 표현했는데, 저자가 소개한 서른아홉 편의 고전들을 공들여 들어보면서, 불현듯 다시 이 책에 소개된 고전의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고전들을 살펴보면, 이미 읽어본 것도 있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도 있었는데, 저자의 애정이 담긴 맛깔스러운 소개 글에 이미 읽은 고전마저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고전들을 어떤 상황에서 읽게 되었고 또 어떤 포인트에서 마음이 열렸는지,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와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 어떻게 달랐는지를 쭉 읽으면서 마치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져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저 단순히 읽고 쓴 추천글이 아니라, 저자의 심장을 뛰게 하고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게 만들 만큼 권하고 싶은 고전이라 더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처럼 저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까지도 움직인 이 책에 실린 고전들은 추후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위시리스트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이 책은 저자의 마음을 움직인 서른아홉 편의 고전에 대한 추천사를 담고 있는 책으로, 동서양은 물론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다방면의 책들을 모아놓고 보면 때로 혼란스럽거나 시선이 분산되어 집중력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지루해져서 시선이 비껴가기보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또 다른 페이지를 읽게 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을 위한 적절한 구성과 저자의 애정이 돋보여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서른아홉 편의 고전 중 특히 더 기억에 남았거나 혹은 이 책만큼은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을 위주로 선정해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을 옮겨보려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 마음의 스위치를 탁 켜버린 저자의 추천사에 대한 목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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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무서록>
키워드: 고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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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의 세계로 뛰어드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 산문의 정수인 <무서록> 일독을 권한다.
시시콜콜하게 살아가는 일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킬킬대며 소비해버리고 마는 마음이 아니라 어디 종지만한 그릇에라도 담아두고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책이다.
2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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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이라는 책은 사실 처음 들어봤는데, 킬 포인트로 확 와닿은 문장 때문에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종지만한 그릇에라도 담아두고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책이란 과연 어떤 책일까? 너무 궁금해서 당장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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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키워드: 정말, 굉장히, 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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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장소설이지만 '성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런 걸 찾으려면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거나 좌충우돌이 전부인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지나왔다면 일독을 권한다. 혹은 오두막에서 숨어 사는 걸 꿈꾸거나 기성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한겨울에 강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갈까'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과 금세 사랑에 빠질 것이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울지도 모른다.

주의사항! 누군가는 '콜필드 두드러기'가 날 수도 있다. "이 미성숙한 애의 독백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시간 아까워!"라고 말하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뭐, 취향 문제다.
29~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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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은 너무 유명해서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여태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부분('자살'과 깊은 연관) 과는 다른 관점으로 소개하고 있어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울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두드러기가 날 수도 있는 취향에 따라 극과 극을 보여줄 이 책! 당장 get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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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봉별기>
키워드: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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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겪지 못한 인생을 '살아보게'한다. 다 읽은 후 고치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게 만든다. 마치 상처 받은 것처럼. 이야기가 몸에 상처를 내고 들어와 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랄까. 어떤 이야기는 읽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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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과 읽은 후가 완전히 달라지게 만드는 짜릿한 소설은 귀하고 또 귀하다. 읽는 동안 잠시 상상 속에 머물며 소매 끝이 젖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완연히 그 소설에 푹 빠져들어 마치 그런 인생을 산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은 그만한 에너지와 필체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시인으로 유명해서 소설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자전소설을 찾아 탐험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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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키워드: 이것은 요리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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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몸의 활력을 만드는 연료이고 영혼을 활짝 펼치는 촉매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죽음의 질을 결정한다. (삶의 질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이 될 때 부엌에 두고 수시로 꺼내보면 좋을 책이다. 내 몸의 나침반이 되어줄 책, 탐욕으로 영혼이 누추해질 때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아껴 보는 요리책이 한 권 있다는 것. 근사한 인생을 살 확률을 높이는 게 아닐까?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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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인생을 살 확률을 높여줄 책이라니. 우아하지만 어쩐지 꼭 한 권은 집에 배치해 두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죽음의 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음식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골골대며 비실비실한 삶을 살 것인가, 에너제틱 하게 반짝이는 삶을 할 것인가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로, 내 몸에 있어 나침반이 되어줄, 나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소박한 밥상에 대한 책은 멋진 인생을 위해 반드시 필독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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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키워드: 너무 따뜻한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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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보다 사랑, 승리보다 패배를 좇는 '똑똑한 남성'이 어디 흔한가? 촌철살인을 무기로 가진 그는 사실 '너무 따뜻한 칼'이었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고 한 조지 오웰.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창을 두고 그와 마주 앉은 기분이 든다. 투명하고 따뜻한.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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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쓴 글은 날카로운 창과 같은 글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자는 너무 따뜻한 칼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창을 두고 마주 앉은 기분이 든다는 말에서 따뜻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에 대해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그를 제대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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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키워드: 무대에서 대사는 조명보다 빛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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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 대신 유사 '로미오와 줄리엣'만 감상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함축적이며 시에 가까운 대사, 인물들의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를 직접 맛봐야 한다.
(...)
모든 대사는 무대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 개성 있게 빛나야 한다는 걸 셰익스피어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특히 드라마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셰익스피어 희곡을 정독하길 권한다.

무대에서 대사는 조명보다 더 빛나야 한다는 것, 스토리를 누추하지 않게 만드는 빛나는 옷이 되어야 한다는 걸 셰익스피어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95~1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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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나 역시 유사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제대로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나 새삼 의구심이 든다.

이번 기회를 빌어 그의 작품을 제대로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시에 가까운 대사,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를 직접 목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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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키워드: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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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뭘까? 혼자 고독할 권리, (필요 없는 건) 알지 않을 권리, 감정을 해소하지 않고 혼자 그득해질 권리가 아닐까? 그것들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정답이 있다고 말할 순 없으나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다친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이 직접 책을 통해 찾아야 한다. 말랑한 책은 아니기에 반짝이는 눈과 능동적인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소로가 말한 "고결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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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다친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무조건 꼭 한번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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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키워드: 어떤 별에도 정착할 수 없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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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자신이 어린아이였던 것을 기억하는 어른을 위해, 나아가 눈앞의 바쁜 일만을 좇느라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어른을 위해, 그리고 어른은 알 수 없는 '아이만의 슬픔'을 위해 쓰인 책이다. 시간을 들여 탐험해야 한다. 깊고 넓다.
2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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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명작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전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언제 읽어도, 누가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책 <어린 왕자>.

어릴 때 몇 번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금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외에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책들이 많아 일단 서른아홉 편을 일괄 위시리스트에 담아보았다. 당장 전권을 찾아 읽을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꺼내 읽어보며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또 어떤 새로운 관점을 선사해 주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볼 예정이다.

만약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엉뚱한 곳에서 추천도서 목록을 찾기보다, 여기 담긴 서른아홉 편을 찾아 읽어보자.

삶과 인생을 바꾸는 이정표 혹은 곪아가던 영혼을 치유하는 치료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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