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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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몇 가지 즐겨보던 프로그램에 패널로 등장하면서 뮤지션으로 알고 있던 요조. 그러나 언젠가부터 연예인에 특별히 관심이 없어지면서 찾아보기보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즐기게 되면서 내 기억 속에서 잠시 사라졌던 그녀.

 

그럼에도 간간이 그녀가 독립서점을 열어서 운영 중이라는 소식과 더불어 유튜브 파도타기로 그녀 지인의 유튜브에 등장한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마치 가끔 연락하는 지인처럼 소식을 접했던 그녀였는데, 최근에 읽었던 책에 그녀의 책이 언급되면서 내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심결에 선택한 그녀의 산문집을 우연찮게 손에 쥐게 되면서 내가 몰랐던 그녀의 일상과 취향, 가족과 지인들, 속에 담아둔 사정까지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뮤지션이자 작가, 동네 서점 주인인 요조가 그녀의 시선에 담긴 일상과 사람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담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잃은 이야기, 채식주의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 책과 책방, 음악에 이르기까지 얽혀있는 다방면의 예술가들과의 관계, 책방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 일상에서 느낀 소소하지만 큰 깨달음 등 요조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그녀만의 느낌과 감성으로 풀어냈다.

 

읽다 보면 요조의 성격과 취향, 스타일을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털털하고, 생각보다 상처가 많으며, 생각보다 엉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는 그녀, 밤하늘의 별 보는 것을 무서워했던 그녀, 한때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지하철을 타지 못했던 그녀, 혼맥에 황태채구이를 즐겨먹는 그녀 등등.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리한 일상을 살펴보며, 소소하지만 특별한 하루 속에 자리한 깨달음을 따라가보자.

 

그녀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은 어딘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가족을 비롯해 지인들을 다정하게 '00~야'라고 부르기보다 '홍길동'은 식의 조금 딱딱해 보이지만, 애정이 묻어있는 이름 혹은 별칭으로 호칭한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이런 호칭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실명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어떤 것들은 진짜 이름인지 그녀만의 애칭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것들도 있는데, 그녀가 부르는 호칭대로 불러보며 이미지를 상상해 볼 따름이다.

 

▶남친: 이종수
▶어머니: 백기녀
▶아버지: 신중택
▶친구: 위아래
▶위고출판사대표/친구: 조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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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자는 얼굴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씩 하루씩을 견디고 있다. 다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위아래와 조소정의 자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가만히 궁금해졌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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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서로의 자는 얼굴을 보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자신 주변 사람들의 자는 얼굴을 생각하게 된 저자. 깨어 있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얼굴은 때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약하고 무해해 보이는 자는 얼굴은 수만 가지의 상황과도 직결된다. 의료진들의 지쳐 쓰러져 자는 잠, 누군가의 죽음 앞에 드리운 잠, 불면증이 시달리다 겨우 든 잠 등.

 

눈뜨자마자 맞는 아침에 무력감을 느낀 저자는 문득 사람들의 자는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은 잠들기 전 어떤 하루를 견디며 보냈을까를 떠올려 보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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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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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누군가의 복잡한 아픔 앞에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나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내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것보다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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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관계로 할아버지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다른 할아버지들과 다정한 라포를 형성해 보는 데도 실패한 나는 어른이 되면서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들을 슬금슬금 피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한 할아버지랑 마주 앉아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

이 할아버지는 친구 박승호 때문에 알았다.

(...)

작년 여름, 박승호는 '울 아버지 전시회 하는데 올래?" 하고 나풀나풀 한 톤으로 말했다.

(...)

할아버지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종수는 "으아, 저도 선생님 손자가 되고 싶네요!" 하고 말했다. 실은 나도 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손자가 되어서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고 싶다고.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원 없이 적었으니 되었다.

101~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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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몇몇의 경험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상황에서도, 특별한 긍정적 경험을 그 위에 쌓게 되면 이것 또한 바뀔 수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일화 중 하나였다.

 

만약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경험이나 긍정적 인식으로 덮어버리면 어떨까? 그 덕에 어쩌면 새로운 시너지와 더 나은 생각들을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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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신봉수와 홍대까지 걸어왔다. 어떻게 그런 연기가 나왔냐고 내가 놀라워하자 신봉수는 요즘 정말 외로웠다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극중 인물의 마음에 자신을 담아낸 그의 얼결의 용기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어쩜 그렇게 다들 연기해 본 적도 없으시면서 잘하시던지. 진짜 놀랐어요. 배우처럼 다듬어진 톤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뭔가 더 정말 같았어요. 아까의 우리들을 보자니 예술이란 것이......"

 

나는 그의 말을 이었다.
"참 흔한 거였어요."
"맞아요."

112~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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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렵게만 생각하는 예술이 사실 어쩌면 의외로 흔하고 일상적인 것을 담아내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희곡을 읽으면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담아낸 것처럼.

 

덕분에 매끄럽진 않지만 오히려 더 현실감 돋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가짜 같지 않은 진짜 같은 느낌!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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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
이 말을 벌써 몇 번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나는 거칠게 세 사람을 따라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세 사람은 내가 평소에 비웃고 놀리는 데 주력해 왔던 자들이다.

 

1. 장강명의 스톱워치 워킹
그의 스톱워치 사용 사례는 비단 작업할 때뿐이 아니었는데, 녹음을 마치고 다 같이 뒤풀이하는 자리에서도 스톱워치를 켜는 장강명을 본 적이 있다.
(...)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어떤 위기가 있었다. 이른바 마감 폭탄이었다. 우연히 일렬로 정렬하듯이 동일한 마감일에 우르르 줄을 섰다.

 

극단적인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몇 시간이고 트위터 타임라인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던 날 아침에, 지푸라기를 잡는다는 심정으로, 나는 스톱워치를 켰다.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원고들을 다 끝내는 데 성공했다.

 


2. 김홍란의 채식 인생
김홍란은 오래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채식 유형) 이었다. 한번은 '천진 포자'라는 만둣집에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가끔 고기만두가 사무치게 먹고 싶어진다고 말하며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만두를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김홍란에게 뭐 하러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했다.

 

김홍란은 무슨 귀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목소리를 죽이고 이른 말을 했다.
"정말 비건처럼 먹게 되잖아? 그럼 응가에서 냄새가 안 나."

 

몇 권의 책의 도움을 받아 2018년 12월부터 김홍란처럼 고기를 끊었다. 초창기에는 비건식을 고수하다가 도저히 내 끼니 환경으로는 비건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 비건을 지향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지금까지 제법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비건식을 고수하던 초창기 내가 가장 열심으로 했던 일이 화장실에 가서 킁킁거리는 일이었다.

 

 


3. 허세과의 일본 제품 불매
왜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것인지 물어보자 허세과는 차분하고 길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본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향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일본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는 나의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

 

그때부터 나도 허세과의 고독한 무브먼트를 따라 했다. 뭐랄까 나의 동참은 정치적 의도라기보다는 그저 허세과를 응원하고픈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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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결연함과 의리, 현실감이 돋는 이야기다. 단순히 놀리는 것에 그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가까이 있는 지인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들이 가진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덕분에 결론은 모두 해피엔딩이다.

 

요즘 말로 하면 벤치마킹 후 이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장점을 극대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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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요한 것은 서울이 그래서 과연 실제로 얼만큼 아름다운지가 아니다. 나는 서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에게 주목하고 있다. 서울에 올 때마다 그래서 서울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서른네 살이 되도록 살았다'는 간단하게 뭉뚱그려진 사실 하나가 조금씩 조금씩 자세하고 분명해지고 있다.

(...)

멀고 수려한 섬에서 몇 년 살고 나서야 서울에서 내내 살았던 내 지난 삶을, 이 아무것도 아닌 시절을 '아름답다'는 감정 아래에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움은 이토록 재미있다.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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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봐야 집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이중생활은 바쁘고 호들갑스럽게 돌아간다고 느껴졌던 원래 살던 도시 서울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별거 아닌 작고 소중한 일상을 하나씩 인식하게 되면서 풍성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은 얼마나 새롭고 흥미진진할까?

 

익숙함에 속아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새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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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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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흔히들 '왜 저래?'가 절로 나오는 얼굴 찌푸리게 만드는 상황들은 사실 깊게 다가가보면 수없는 차별과 불평등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끊임없는 외침이 불러온 모습들이다.

 

그렇게 자리한 구겨진 얼굴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아 원래 그런 모습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그런 그들을 마주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얼굴 피라며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저자는 책방을 운영하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현실은 생각보다 낭만적이거나 평화롭지 않음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덕분에 구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웠다고 말한다.

 

 

경험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모두 저마다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드러 낼 수 없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마음속에 한 움큼 움켜쥐고 한발 한발 나아가며,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그러나가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도 알 수 있었다.

 

더 가치 있는 삶, 더 나은 삶을 위해 가까이 있는 멋진 사람들을 흉내도 내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보기도 하며,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아픔에서 한 발짝 나아가 보는 일련의 행위들은 어쩐지 자꾸만 응원과 격려를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나 혹은 주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곧 저자처럼 익숙함에서 벗어나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나날들로 채워보면서 하루를 꽉 채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만의 감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부드럽게 매일매일 그렇게 쌓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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