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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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조금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서사를 반추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져보았다.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민담과 설화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전해지는 다양한 신화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섦으로 다가왔는데, 책에 쓰인 이야기를 따라 나의 삶에 대입해 보면서 어쩌면 눈앞에 해답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근본적인 탄생에서부터 죽음, 삶, 경쟁, 질병, 차별, 자기애, 결핍 등에 대한 방황과 고통에 대해서도 신화적 해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나'의 존재성을 신화 속 인물들에 대입해서 '나였다면?'이라는 물음을 던져봐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태초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이야기에서부터 인도의 삼주신, 한국의 바리데기, 나무도령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 이야기까지 두루 만나볼 수 있는데, 나에 대한 고찰을 떠나 그냥 옛 구전설화나 전래동화를 읽듯 만나봐도 괜찮을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우리나라의 설화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나무이야기>와 <원천강본풀의 '오늘이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담겨 있는 스토리가 흥미로운 것은 물론, 담겨있는 교훈 또한 꽤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에서 얻은 깨달음도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그동안 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던 이야기에서 관점을 달리하니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옛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인생을 사는 법을 이렇게도 배울 수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한국 민담 <나무도령(목도령)>이야기

 

스토리)
타락한 세상 속 제 욕심만 찾는 사람들이 대홍수로 휩쓸려 사멸하고 오직 나무도령만이 아버지 나무에 올라타 살아남는다. 그것이 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목신의 만류에도 나무 도령은 물에 휩쓸려 죽어가던 한 소년을 살려주게 되는데, 그 소년은 보란 듯이 나무 도령을 배반한다. 어떻게든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만, 나무 도령은 모략과 폭력을 이겨내고 제자리를 지키지만 소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무 도령과 함께 인류의 또 다른 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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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신화적인 동시에 사회적이기도 한 이 이야기에 대하여 나는 이를 또한 자기서사로 사유한다. 불완전한 갱신은 곧 나의 일이다. 내 안에 나무 도령과 배반의 소년이 공존한다. 스스로 소년을 건져서 살려두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죽여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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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하고 불완전한 '나' 혹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민담이다. 타락한 인간을 신은 모조리 휩쓸어 사멸시키려 했으나 소년을 구한 것은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내 배신을 당한다. 배반하는 소년과 본래의 자연성을 지니고 있었던 나무 도령.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는 두 가지 이율배반적인 양가감정이 모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오로나 나의 몫이다. 삶을 사는 데 있어 배반하는 소년이 될지, 아니면 본래의 자연성을 지닌 나무 도령이 될지.

 

 


<원천강본풀>의 오늘이 이야기

 

스토리)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오늘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다 오늘을 생일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로 정하면서 신 혹은 부모가 왜 자신을 적막한 세상에 던져놓고 아무 말이 없는지를 묻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신화에서는 오늘이가 찾아 나선 곳을 원천강이라고 말하는데, 홀로 가는 그 길에서 오늘이는 여러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장상이와 매일이, 연꽃나무, 이무기, 선녀 등. 그리고 그들과 마음을 나누어 연결을 이루어감으로써 오늘이는 존재의 고립과 무의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황무지 속에서 '나'라는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하게 되는 고민이자 질문이다. 이 신화 속 오늘이는 처음에 원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오늘이라는 이름이 정해지고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원천강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여정 중에는 수많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오늘이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원천강에 가거든 꼭 그들이 앓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봐달라며 매달린다.

 

마침내 원천강에 다다른 오늘이는 그곳에서 그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찾던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다. 더불어 원천강은 모든 시간이 모여 있는 곳, 시간이 원천이 되는 곳임을 알게 되면서 그곳에 있는 선인들을 통해 길에서 만난 존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답을 듣게 된다.

 

■이무기
여의주 세 개를 입에 물고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에게 전하는 해법은 여의주 두 개를 뱉고서 하나만 무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한 가지를 제대로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돈, 권력, 명예 세 가지를 다 가지려 했기 때문에 탈이 났던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만약 하나의 여의주만 가져야 한다면 '자기 자신'이라는 여의주를 가져야 스스로 빛나고 가벼워질 수 있다며, 승천을 위해서는 입안 가득 물고 있는 돌덩이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꽃나무
꽃봉오리는 잔뜩 맺혔는데, 피어난 꽃은 단 한 송이다. 그런 연꽃나무에게 전하는 해법은 금지옥엽 한 송이 꽃을 뚝 꺾어서 내려놓는 일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어느 한 가지 대상이나 가치에 집착해서 그것이 전부인 양 부여잡고 발버둥질 칠 때 다른 모든 가능성을 길을 잃는다며, 그것을 미련 없이 훌쩍 내려놓는 순간, 수많은 새로운 꽃들이 차락차락 피어날지 모른다고 말한다.

 

■별층당에서 글만 읽던 처녀, 총각 매일이와 장상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매일이와 장상이에게 원천강이 전한 답은 둘이 짝을 이루어 살라는 것이었다. 
이때 두 남녀의 결합이 의미하는 일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남다른 이름으로 살펴보면 매일과 장상, 매일 새로운 책을 이리저리 보는 사람과 같은 책을 하염없이 보는 읽고 또 읽는 사람. 달리 표현하면, 눈앞의 일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과 아득히 미래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다. 저자는 '매일'과 '장상'의 다른 이름으로 '순간'과 '영원'으로 이야기하는데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져야 하고 영원은 순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길은 열릴 수 있다고.

 

■깨진 바가지를 들고 우물가에서 울던 선녀들
다시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는 우물물을 퍼내야 하는데 바가지가 깨져서 우물물을 퍼낼 수 없어 울던 선녀들에게는 오늘이가 그 해답을 전해준다. 댕댕이풀을 으깨서 바가지의 구멍을 메꾸고 말리자 물을 풀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으로 물을 퍼내자 우물은 깨끗이 비워진다. 당연하고 뻔하게 생각되지만 우울과 눈물도, 바가지도 깨졌으면 때우라고 전한다. 하지만 우울에 빠져 있는 당사자들은 그 일을 하지 못한다. 틀린 곳부터 다시 한 걸음씩 움직여 나아가기! 오늘이가 스스로 찾아낸 답이다!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먼 옛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다. 눈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점들에 대해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만 있지는 않은지, 혹은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와 협동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고, 문제가 발생한 지점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실천력도 필요하다. <오늘이 이야기>는 자신의 문제에 있어 눈먼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끔한 충고처럼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시시포스 이야기

 

스토리)
시시포스 이야기는 제우스의 분노를 산 코린토스의 왕이 형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걸로 유명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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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의 이야기를 자기 서사로 재구성하면서 도망치고 싶었던 반복되는 과업들이 형벌이 아니라 당연히 그리할 삶이었다. 축복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얼마나 벅찬 일인지!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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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고 부딪쳐 싸우는 일은 인간의 자연적 속성이다. 그 자연성을 오롯이 체화할 때, 인간은 영원성을 얻는다.
(...)
돌을 굴려 올리는 일을 영원히 계속하는 시시포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고 신이다. 여기 있는 나, 그리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걸림 많은 세상 속에서 묵묵한 나아감을 그치지 않는 사람, 그대가 곧 영웅이고 신이다.

1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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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것을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형벌로 보지 않았는데, 시시포스의 거듭된 오름. 그것은 똑같은 오름이 아니며 계속 새로운 발견과 함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앞서 형벌로만 지켜봤던 영원한 형벌이 관점을 다르게 하니 어쩐지 신나고 즐거운 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것! 또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에서 매일 색다른 '오늘'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죽음에 대해 다룬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도랑선비 청정 각시 노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생명의 끈을 억지로 붙잡으려 한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망자를 떠나보내고 동시에 죽음을 통해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은 <도랑선비 청정 각시 노래 이야기>는 서로 대비되는 이야기라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을듯하다.

 

<바리데기>이야기는 어릴 때 읽어본 이야기라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인생을 신화를 통해 만나보니 새삼 사람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있고,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과 시선도 달라짐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무엇을 하든 즐겁고 성취감 있게 해내는 것! 출발과 끝에 있어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며 내 결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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