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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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근에 읽은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릴레이로 읽게 된 세 번째 책으로, 이웃님이 추천해 주신 동화책이다.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에서 소개된 책 중에서 <긴긴밤>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인상 깊어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고 서평을 남겼는데, 이를 보고 댓글을 남겨주신 이웃님과 소통하다 추천을 받고 읽게 되었다.

 

두 권의 동화책을 이번에 접하면서 느낀 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나 전래동화만이 동화책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과 아이들에게만 동화책이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더불어 다른 결의 색다른 동화책도 꽤 괜찮다는 점이었다.

 

다양한 출판사의 서평에 참여하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며, e북을 즐겨 하면서 전보다 좋아진 건 보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과 이로 인해 읽는 방식에의 변화도 체감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부족했던 타깃의 다양성을 동화책을 읽음으로써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동화책을 읽을 나이대의 아이를 가까이 두지 않고는 일부러 동화책을 찾아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이번 기회에 숨겨져 있는, 혹은 잘 알지 못했던 동화책을 찾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번에 읽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은 글귀보다 그림에 더 시선이 많이 갔는데, 연필 드로잉을 통해서 표현된 터치감이나 섬세한 밑그림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원래도 그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표현된 질감이나 원근감의 표현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부분은 자꾸만 더 보고 싶게 만들어 꽤 오랫동안 그림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책 표지의 질감, 색상, 연필 드로잉, 타자기로 타이핑한 듯한 타이포 등은 왠지 모르게 예스러운 편지를 떠올리게 했는데, 낡고 오래된 것들만이 가지고 있는 포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져 추억의 앨범을 들여다보는 느낌도 들었다.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촉감과 냄새, 손으로 만져지는 질감이 빈티지한 감각 속에서 잘 어우러져 종이책만의 매력을 잘 전해주었다.

 

그림에 매료되어 잠시 스토리에 대한 언급이 밀려났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스토리 또한 이 책의 분위기나 그림과 너무 잘 어우러졌는데, 우리가 때때로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 살던 한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자신의 이름,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로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의사를 찾아가게 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현재 그의 안에는 영혼이 없으며, 주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거라며,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리라는 의사의 처방에 그는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혼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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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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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자는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머리가 길게 자라고 수염은 허리에 닿도록 계속해서 영혼을 기다리는데, 드로잉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쓸쓸하고 공허한 공원, 불빛에 어른거리는 남자의 그림자, 어디선가 헤매고 있는 영혼의 모습들을 통해 오랜 시간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자꾸 들여다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부분은 왼쪽 페이지에서는 영혼이 남자를 찾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고,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남자가 오랜 시간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남자를 담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머리 길이가 길어지고 화분이 자라고, 안경을 쓴듯한 모습을 통해 오랜 시간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영혼의 오랜 방황의 모습은 따로 책에서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마침내 영혼과 사내가 만나면서 드로잉에는 색이 입혀진다. 

 

주인의 몸에 영혼이 안착한 이후 사내의 얼굴에선 미소가 엿보이고,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어딘가 싱그러움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푸릇함을 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화분들과 삭막했던 공간이 따스함으로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울창한 정원으로 변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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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얀은 그의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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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이 산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을 건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마음이 와닿지 않는 너무 먼 곳으로 달려가려고 애쓰지 말고, 조금은 숨돌리며 천천히 인생을 살아가는 건 어떨까? 숨 가쁜 일상 속에 치여서 나를 돌보지 못하고 쳇바퀴 굴러가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인생무상이 어쩌면 이 남자의 일상을 꼭 닮아있진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혼이 탈탈 털려 전방주시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더불어 한때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가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나의 영혼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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