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한다 분서를
신재기 지음 / 그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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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존재의 이유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 증명의 도구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돈이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명예나 자식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도구는 무엇일까. 들어서 알만한 직장이나 일가를 이루지 못한 나로서는 ‘존재의 이유’라는 거창한 명제에 한 마디 거들기도 알량하다. 그러나 목숨달린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하지 않았던가. 차제에 신재기 교수의 『나는 계획한다, 분서를』을 읽고 존재의 이유를 새삼 되짚어볼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다섯 꼭지로 나뉘어져 있다. 저자의 유년시절과 가족의 정을 회고하는 1장, 세상을 관조하는 2장, 수필의 유쾌한 쌍방향성을 보여준 3장과 함께 순수 문학에 대한 저자의 열망을 풀어낸 4장, 그리고 은사에 대한 감사를 담은 5장의 구성이다. 수필이 가지는 따뜻함과 정겨움을 잃지 않되 생각에 깊이를 요구하는 글들로 책은 한층 무게감을 얻고 있다. 표제로 쓰인 ‘나는 계획한다, 분서를’은 책에 대한 집착과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들을 말하고 있다. 책의 유혹에 번번이 넘어가는 것은 그것을 손에 넣을 때의 황홀함을 뿌리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혼을 살찌게 한다는 책이 불안한 영혼의 초라한 도피처가 되고 말았다니, 의지와 실천의 괴리로 골머리를 앓는 저자의 난감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읽고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하며 거기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나아가 새로운 꿈을 꾸는 초월의 경지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사서 내 곁에 두고 싶은 나의 욕망이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존재 이유이고 의미’라는 말을 하고 있다. 공부를 위해 필요한 책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 지금까지 쏟아온 책에 대한 열정과 욕망의 승화를 통해 분서는 저자가 꿈꾸는 영혼의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넉넉했다. 인간적인 면모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문체와 더불어 비로소 지향점을 찾은 선명함 때문이었다. 멀리 정상이 보이면 마음을 다잡고 걷게 되지 않는가. 글을 쓰는 사람,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목표를 정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지식으로 곤란을 겪을 때가 많다. 문학에 대한 접근은 지식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라는 주장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깨달음임을 안다. 내 존재의 의미는 글인가, 글쓰기인가. 아니면 배움인가. 평생을 통해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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