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존중 - 형통한 그리스도인의 비밀
존 비비어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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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안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평생 곁에 두고 생각나면 꺼내 들어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싶은 인생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처음에 책의 일부를 대충 훑어보았을 때는 저자의 이전의 작품인 ‘순종’이나 ‘무시되어온 축복의 통로’의 내용과 거의 흡사해 보여서 별로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읽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나의 선입견(?)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와장창 깨뜨린 책이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식상한 단어가 되어버린,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주제인, “존중”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존중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경외로부터 시작한다. 경외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가 바로 존중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보내신 자를 영접(존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존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자를 예수님이 존중하시고 보상하시겠다고 하셨다.

책의 앞부분에 르호보암 왕과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경고등이 켜졌다. 이것이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데 실패했던 자들로 기록된 그들.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하나님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약속의 땅으로부터 배제되는 엄청난 비극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들의 실패의 원인은, 지혜로운 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고를 귀담아 듣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초기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듣기를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셨다. 불순종, 거역의 습관이 굳어진 결과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지금 내게 좀 불평하고 반항하고 말씀도 잘 안 들어도 별탈이 없다고 안심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굳어졌을 때 추후에 어떤 자리에 앉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은 뿌린 대로 정확하게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온전히 받지 않는, 듣기를 거절하는 태도, 온전한 경외감이 없는, 지극히 교만한 태도. 하나님이 여러 번 말씀하셔도 고치거나 돌이키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래왔었음을 나의 리더를 통해서 들었었는데 책을 보니, 그런 나의 모습이 좀 더 자각되었다. 이것은 정말로 살고 죽는 문제이다. 불평, 원망, 듣지 않는 것, 불순종들이 뿌리 뽑혀지고,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순종하는 습관이 온전히 자리 잡히기를 소원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삶에 그렇게 존중이 없는지를 정말로 미처 알지를 못했다. 한 과 한 과를 접하면서, 통렬히 깨달은 것은 나의 삶에 존중이라는 덕목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무례한 태도를 폴폴 풍기며 다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중심에는 진정한 존중은 없었다. 마땅히 존중해야 할 사람들을 진심으로 높이는 마음, 그 사람에게 걸 맞는 예우(?)를 온전한 마음으로 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나는 판단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기까지 했다.

가깝기로는 나의 가족들, 특히 부모님, 언니들에게 그랬다. 존중은커녕 또박 또박 말대꾸하고, 혼나기라도 하면 막 대들고 싸웠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나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억울해 하고 분노했다. 오랜 시간동안 그 분노를 붙들고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며, 늘 탓하며 살았다. 부모를 경멸했다. 경멸은 질색하는 표정, 일을 시켜도 꾸물거리는 태도, 불평 따위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부모님께 했던 반응들이다. 부모를 경홀히(존중하지)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하나님의 저주. 반대로 부모를 존중하며 장수하고 복을 받아 잘 살 거라고 나와 있다. 나의 삶이 잘 안 풀려왔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에 대한 무시하고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세대에 퍼진 문화와도 같았다. 선생님들의 단점을 가지고 비웃고 험담하고 그것으로 재미를 삼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짓들을 했었다. 특별히 고3이었을 때는 1년 내내 담임선생님과 반 전체가 대치상태였다.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경멸, 미움, 억울함이 우리 반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담임선생님이 쉽지 않은 타입이긴 하시지만, 그래도 그렇게 반응했던 것은 우리들의 크나큰 악이었다.

교회에서도 선생님이나 전도사님, 목사님들에 대한 나의 존중의 점수는 글쎄 형편없었다. 무시하거나 거역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어렵기만 한, 그래서 근처에도 잘 가지 못했다.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했지만 그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온전히 따르지는 못했다. 이후에 하나님이 내게 보낸 주신 영적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나는 온전히 존중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지만, 판단하는 마음이 많았다. 오랜 시간 미워하고 반항했다.

나의 잣대로 지도자를 판단했었다. “저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 아니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내가 아는 기준과 틀려. 적어도 이래야 되지 않아?”라고 나의 잣대로 판단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판단했던 것과 동일한 태도라는 것이 보였다.

그 결과 나는 지도자들을 존중함으로 받는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일한 지도자에 대하여 마음 다해 존중한 사람들은 엄청난 보상을 받는 것을 보았다. 결국 지도자의 어떠함이 관건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의 태도가 관건이라는 깨달았다. 나의 태도가 틀려먹었었다. 전적으로 말이다. 나는 그동안 존중의 테스트에서 번번이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높이는 사람을 보면, 뭐야 쟤, 너무 오버하고 아첨하는 것 아니야? 라고까지 생각한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판단한다. 또한 작은 자나 큰 자 상관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틀린 생각인지! 마땅한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 하셨고, 특별히 잘 가르치는 장로들에게는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라고도 하셨는데 말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권위자들을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해서 내세웠던 내 식대로의 평등이었다.

특별히 ‘사역자 존중하기’ 부분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나를 목양해주는 영적 리더들에게 재정적으로 충분히 존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어찌나 죄송하고 부끄러웠던지. 나의 필요만을 돌아보았지, 나의 리더들의 재정에 대하여 충분히 마음 쓰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존중의 사례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고, 그리고 정말 신기했다. 사역자들을 재정적으로 충분히 존중하는 교회 교인들의 재정상황이 잘 풀리는 것을 보았다. 애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의 것만 신경 쓰며 살았기 때문에, 나의 재정 상황이 궁핍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

“아내 존중하기”에서 저자가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 감명을 받았다. 칭찬과 사랑표현도 자주 해주는 등, 소중하고 귀히 대하는 모습. 그리고 아내가 소명을 찾도록 적극 돕고 격려하고 장려하는 것을 보면서, 아내의 상처가 회복되도록 돕는 것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았다. 정말 멋진 남편이 아닌가! 이런 결혼관계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풍성하게 복을 주실 때가 오히려 더 넘어지기 쉬운 때라는 것. 기도하게 된다. 가난할 때만이 아닌, 부요함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겸하여 그동안 살면서 지은 모든 존중하지 못한 죄들을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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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ing 2011-10-2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존 비비어'를 검색하다가
리뷰 쓰신 걸 보고 댓글 남깁니다.

내년 1월에 존 비비어 목사님과 리사 비비어 사모님께서
한국에 오시거든요~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하셨겠지만
정말 강력한 시간이 될거라 믿어 소식 알려드리려구요^^

www.어웨이크2012.com
으로 가시면 더 자세한 정보 얻으실 수 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