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이산하 지음 / 양철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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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슴이 뛸 때가 있다. 둥둥둥둥. 마치 몸속에 북 하나 있는 것처럼. 긴장하거나 분노할 때, 또는 격렬하게 운동하거나 흥분할 때 내 몸 속에서 울려나오는 북 소리로 피부가 울퉁불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북소리는 주술적이다 못해 신성하기까지 하다. 동물이나 적을 위협하여 격퇴할 때, 또 제사나 주술음악에 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피의 온도를 올리는 소리, 혈류를 방출하는 소리.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몸 속의 북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세상 뭐 그렇고결코 변하지도 않을 거 같고그럴 때 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북의 소재가 대부분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다던데 이 소설은 어쩌자고 양철로 만든 북일까. 얼마나 요란하기에...그런데 소설 첫 문장은 아주 고요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깊은 산에 깃든 암자는 새가 알을 품은 자세였다. 예로부터 이 산은 숲을 품었고 숲은 절을 품었고 절은 새를 품어왔다. 그래서 절 뒷산의 이름도 부화산(孵化山)이었는지 몰랐다(P11)

 

이 고요한 문장에서 풍경소리 하나 들은 것은 착각일까. 성장소설답게 알을 품고 있던 산이 알을 깨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복선처럼 느껴졌다. 문학소년 철북이가 법운 스님을 따라 뜨거운 여행길에 오른다. 청도 운문사로, 섬진강으로. 성 베드원 여자 수도원에서 불일암으로, 화개장터로전국을 떠돈다. 실제 경험이 80% 정도라고 밝히고 있듯, 실존 인물과 시대를 대비시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혁당 사건 당시의 법정 스님 이야기도 잠시 나온다. 하지만 여행 중간중간 쏟아내는 문장을 꼽꼽 씹어먹는 맛. 그 맛을 감히 스님의 바랑에서 생쌀을 꺼내 씹어 먹던 그 맛과 견줄 수 있을까. 줄거리 보다는 문장을 음미하는 맛이 더 좋았던 소설.

 

운문사 아침 예불을 묘사한 부분은 이산하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소리는 저음의 느린 울림이 점차 강물을 빠르고 끈질기게 훑어가며 파장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어느새 경쾌하게 푸른 평원을 아득히 달리고, 그러다가 또 강물 속으로 잦아든 중심음이 절규하듯 흐느끼며 긴 여운을 자욱이 남기는 것이었다. 거대한 노송으로 울창한 산자락과 경내의 크고 작은 건물들도 비로소 묵언에서 깨어나는 듯했다(P103)

 

법당을 가득 메운 복사꽃 같은 어린 여승들이 붉은 촛불 아래에서 합송을 하는 모습은 고혹적이면서도 장엄했고, 장엄하면서도 도저했고, 도저하면서도 삼엄했고, 삼엄하면서도 처연했다.(P103)

운문사에서 떠날 때 느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솔밭에 바람이 불자 솔숲은 마치 찻물 끓이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잎을 몇 차례 우려낸 찻물처럼 여러 번 걸러낸 바람일수록 맑고 깊었다(P115)

 

철북이 세코날을 사 모으며 구평동 작은 가구공장에서 일할 때의 묘사는 얼마나 절망적으로 아름다운지.

가구 공장은 여전히 톱밥 같은 월요일이었고, 페인트 가루 같은 화요일이었고, 본드 같은 수요일이었고, 시너 같은 목요일이었고, 포르말린 같은 금요일이었고, 먼지 같은 토요일이었다(P127)

 

아버지를 회상하다 맞은 아침 물안개가 강의 속눈썹처럼 햇빛을 열고 닫았다. 강이 눈을 한번 깜빡이면 속눈썹은 수십 번을 긴장한다. 그때마다 물안개는 바람을 타고 가장자리로 이동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편 우리의 현대사를 강여울을 통해 통찰하고 있다.

강에서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고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지점을 여울이라고 하지. 그런데 그 여울을 가만히 보면 가장 격렬하게 소용돌이칠 때가 햇빛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지. 너무 찬란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네. 문득 햇빛에 부서지는 그 찬란한 순간이 바로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P161)

 

그 강이 파란만장한 우리의 현대사라면 여울은 그 중에서도 피와 뼈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통곡의 현장이겠지(P161)

 

종종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네. 생각이 다 같을 수야 없겠지만 가능한 멀리 보며 걸었지. 멀리 볼수록 길이 하나로 모아지니까(P161)

 

작가는 서문에서 줄탁이란 말을 했다. 알이 깨어날 때 안팎으로 동시에 알을 쪼은다는 것. 안에서는 태어날 새끼가, 알 밖에서는 어미가 알을 쪼아 비로소 탄생의 껍질이 깨어진다. 이 소설은 줄탁의 소설임이 분명하다. 법운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철북이의 성장을 돕는다. 그러나 마지막 알 껍질은 스스로 깨치고 나와야 하는 것일까. 철북이는 여행 후 학교로 돌아와 시화전 준비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선생님에게 달걀을 던진다. 그러면서 기술하고 있다.

 

변화는 항상 파기 뒤에 오는 것이다. 철북이는 이날 흘린 눈물의 양만큼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다(P236)

 

사춘기란 북으로 치면 아마도 양철로 만든 북일 것이다. 반응이 즉각적이며 소리가 요란하고 표피적이다. 한때 신문고 같은 북소리를 내기도 했던 시인. 그는 앞으로 어떤 북을 칠지북소리의 가장 큰 힘은 공명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북을 품고 있기에. 가장 심장을 닮은 소리. 이 소설을 읽으며 내 몸 속의 북이 조금 울린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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