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펭귄클래식 12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키티에게 거절당한 레빈은 그에게 재충전의 공간인 시골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노동하며 보람찬 삶을 살던 중, 돌리를 만나 키티의 거절에는 별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에 레빈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여느때처럼 노동이 끝난 뒤 생각에 잠겨 있던 레빈은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키티를 발견하고, 역시 자신은 노동하는 삶보다 키티를 사랑하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레빈을 찾아오기도 하는데, 형제 간 다툼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다. 짧았던 시간이지만 레빈은 이 일로 죽음에 관해 꽤 오래 생각한다. 2권에서 레빈과 키티는 결국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은 신혼 부부답게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서로에게 맞추어 나간다. 한편 카레닌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 결과 안나를 잡아 두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안나는 이미 브론스키의 딸을 임신한 상태이며, 그러고 싶지도 않다. 카레닌은 출산 직전 극심히 앓는 안나를 순간 관대하게 용서한다. 안나는 딸을 출산한 뒤 브론스키와 지내지만 심신이 불안정하다.

레빈과 키티는 아주 이상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다소 절뚝거리는 안나와 브론스키에 무게를 두고 글을 쓴다. 솔직히 2권을 읽으면서 여러 번 "하아... 이것 참...." 하고 내뱉었다. 나는... 나는 누구 편을 들 수 있을까. 그리고 들어야 할까. 평소 나는 당연하게도 불륜을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가정을 무참히 깨 버리는 아주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애정이 없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결혼 생활에 회의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내가 순간적인 감정에 잘 휘둘리는 성향이 있기까지 해서 안나의 입장에 크게 공감해 버렸다. 이 세 가지가 첨예히 대립해 과하게 한 인물에게 치중되지 않아야 하는데, 중얼거리면서도 자꾸 안나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바람을 피운 장본인이긴 하지만, 모든 정황이 그녀에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 마냥 불쌍했던 것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서로를 향한 감정은 처음 같지 않다. 안나는 1권에서 이미 그랬듯이 끊임없이 브론스키에게 현실보다 조금 더 용맹할 줄 알고, 조금 더 한결같으며, 조금 더 총명한 이미지를 덧씌워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던져 넣는 것처럼. 그녀가 진심으로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깨어진 상황에서 브론스키와의 결합이 최선의 선택지이기 때문에 처절히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끝없이 의심하고 확인하게 되고, 그걸 당하는 상대방은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감정이 사그라들어 버리고. 벌써부터 안타까운 결말이 슬슬 예감된다. 브론스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안나의 외관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자신의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이 다시 불타오른 것은 안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때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남자는 여자와 가까이 지내다가 확신이 들 때 청혼을 하면 그만이지만, "처녀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고작 대답만 할 뿐"이라는 초반부 돌리의 대사가 떠올라 기분이 묘해졌다.

추가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는 레빈이 시골에서 지내며 노동하는 모습을 그린 구절이다. 톨스토이는 아마 농촌에서 직접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구슬땀을 흘리거나, 직접 자연과 부딪치는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을까. 생생하고 따뜻한 문장에 창밖의 추운 날씨를 잠시 잊고 여름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둘째는 감정의 일시성이다. 저번에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서로에게 품은 감정이 일시적인 욕망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심을 기저에 깔아두고 읽어서인지 거기에 유독 치중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그 주제에서 몸을 뺀 덕에 레빈과 니콜라이를 지켜보며 영원히 바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금세 사라져 버리는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먹먹했다. 죽음에 관한 레빈의 고찰은 내가 이따금 하는 것과 비슷한데,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곱씹고 싶어 일단 적지 않고 아껴 두려고 한다.

그동안 꽤 바빠서 이 책의 서평을 오늘은 마저 올려야지 여러 번 다짐했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완성하지 못했다. 마침 시간을 비워 둔 게 오늘이라 볼일이 다 끝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는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화양연화>를 보고 온 날이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관계는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의 배우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느낀 일종의 상실감과 절망감을 바탕으로 호기심 반, 동지애 비슷한 감정 반에서 시작된다. 『안나 카레니나』와 <화양연화> 모두 단순히 '불륜'이라는 다소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감정을 섬세히 표현해낸 창작자의 능력도 능력이겠지만 그보다 다른 게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 중이다. 사실 두 작품은 소재를 제외하면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어쩐지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이 이야기를 꼭 적고 싶어져 마지막 문단에 달아 둔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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