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K-포엣 시리즈 12
양안다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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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접할 때마다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현대 시는 상이한 단어들의 나열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학의 일부를 놓을 수 없다는 일념만으로 애써 찾아 읽어가며 공부하고 있다. 이번에도 해설을 바로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독 여부를 떠나 나만의 해석을 펼치겠다고 세워 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접어 두었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이 시 해설도 완전한 해답이 아니며 나만의 방식대로 느끼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한 일을 생각하며.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에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만 남아 있다. 배경으로 ‘끝’을 마주한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정확히 무슨 사건으로 끝이 도래했는지, 두 사람이 유일한 생존자인지 등에 관한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로써 사회적 배경은 모두 저편으로 밀어 두고 너와 나라는 두 사람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시집은 꼭 한 편의 영화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장」으로 독자를 자신의 꿈에 초대하며 시작했던 이야기는 연극이 끝난 뒤 배우들이 직접 나와 관중에게 인사하는 「커튼콜」로 막을 내린다. “어느 날 세계가 망가지는” 나의 꿈으로의 초대장을 발부한 이후 무대는 ‘애프터월드’로 옮겨진다. 유혈이 낭자하고, 밖에서는 온통 폭약이 터지고, “학생들이 당연한 것을 요구하나 요구는 묵살”당하는 등 세계는 시끄럽다. 그와 동시에 세계는 침묵한다. 시끄러운 한복판, 조용한 방 한 칸에 지내는 두 사람이 조명되고, ‘너’와 ‘나’는 곧 주인공이 된다. 그들도 어쩌면 침묵하는 세계의 한 부분이다.



‘너’는 그림을 그리고, 밖에 나다니며 “어느 도시에 방문”하기도 하고, 양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수영하는 인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캔버스에 갇히는 꿈을 꾸고,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너와 끝없이 깊어질까 봐” 무서워한다. 수록 시는 전부 ‘너’의 시점에서 적히지 않고 ‘나’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름이나 성별, 혹은 그 외의 특징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신호도 없이 오직 너와 나로만 칭하고 있기에 중간에 몇 번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너였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차이점을 가진 너와 나는 하나인 것도 같다. “신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심판도 없이, 용서도 없이 관객을 관조”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극 안으로 속절없이 끌어들여지고, 나 역시 그 연극의 한 부분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네가 죽은 뒤 「불과 재」에서 나는 큰 슬픔에 너의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이어 「커튼콜」에서는 대부분 가정형의 문장으로 슬픔과 울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자신이 던진 화두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부르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종결되는 이 시의 말미에는 그래도 너의 죽음으로 슬픔 대신 얻게 된 값진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인생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연극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고 누구든 상대 역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자주 이를 간과하고는 한다. 양안다가 만들어낸 세계처럼 무너지거나 궁지에 몰려 의지할 곳이 서로밖에 없는 “세계의 끝에서(야)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양안다가 시 쓰는 일을 “혼자 추는 춤”이라고 말했으나 실상 “춤을 출 때마다 누군가와 함께”였던 것처럼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인 에세이에서 “나보다 병든 그가 나를 많이 치유”했다고 말하듯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병든 인간을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공장에서 도망치는 자본가들”을 바라보거나 “방에서 침묵”하며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한다. 가치 가능성을 잊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싶다. 표지에서부터 드리워지는 서늘한 아포칼립스 같은 분위기도, 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에 서게 되는 것은 무미건조한 두 사람인 것도, 양안다가 사람을 보고 질문하는 방식도 매력적이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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