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
황현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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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의 저서 '오하기문'이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황현은 조선 말기인 고종, 순종 때의 사람이다.  지배층의 부패에 염증을 느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일생 대부분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저술작업에 몰두하며 보냈다.
  황현의 여러 저서 중 이 책은 동학농민운동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자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고종 및 순종 부분은 일본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상태로 편찬되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동학농민운동 관련 다른 자료 역시 주로 일본 쪽 자료라 그들의 시각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직접 겪은 황현이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합쳐 기록한 이 책은, 동학농민운동을 연구하는 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출판사에서도 이 책에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라는 부제를 붙였을 정도다.

 

 

  사실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본문만 따져도 550페이지가 넘는데다가, 옛날 책을 번역한 것이라 문장 호흡도 길고 문체도 요즘의 문체와는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북이 속도로 읽다가, 어느 정도 읽어서 이 책의 문체와 서술방식에 익숙해진 후에야 겨우 속력이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황현이 살던 조선 말기는 지금처럼 각종 매체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라 정보수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여기저기에 사실관계가 틀린 것들이 있다. 

  또한 요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동학농민운동을 긍정적인 쪽으로 배웠다. 민초들이 부패한 지배층과 우리나라를 노리는 일본에 맞서 일으킨 '반 봉건적이고 반 외세적인 항쟁' 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황현이 동학농민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 한국인의 시선과 많이 다르다.  황현도 썩을대로 썩은 당시 지배층을 맹렬하게 비판했고, 그런 정치인들 때문에 고통받던 민중의 비참한 처지에 분노했다.  하지만 황현은 양반으로 태어나 유학 교육을 받고 성장한 유학자였기 때문에, 양반과 유학자의 시선으로 동학농민운동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서도 동학농민군을 거의 '도적' 이라고 부를 정도로 동학농민운동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우선, 황현은 자신의 견해와 상관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즉, 애초에 부정확한 정보를 입수해서 사실관계를 잘못 적은 것은 있어도, 자신이 동학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동학농민군에 대해 없는 사실을 꾸며서 비난하거나 동학농민군이 잘한 행동을 일부러 누락하지는 않았다.  동학농민군이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대로 기록했다.  게다가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려고 온 관군이나 관리들의 기막힌 처신에 대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그대로를 기록했다.

  책을 읽다보면, 동학농민군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주관과 신념에 따라 신랄하게 하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어 후세에 전하겠다는 황현의 신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분명히 동학농민군을 비판하는 논조로 쓴 책인데도,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당시 백성들이 어째서 나라에서 금지한 동학을 열렬히 지지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지배층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우리나라를 두고 청나라와 일본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사실관계가 틀린 게 제법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책을 꺼릴 독자도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데...

  다행히 그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역자가 한문으로 된 책을 단순히 번역만 한 게 아니라, 같은 시대의 여러 자료와 일일이 대조하고 검토해서 본문에 맞먹는 양의 각주를 붙여서 사실관계를 바로 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각주의 내용이 워낙 풍부하고 다양해서, 이 책 본문을 읽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런저런 단편적인 지식을 얻는데도 도움이 된다.

 

 

  황현은 1910년 경술국치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자결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황현이 나라가 망한 책임을 통감하며 자살한 게 좀 이상해보일 수 있다.  황현은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 파묻혀 산 사람이다. 누가 그런 사람에게 망국의 책임을 물을까?
 
  하지만 황현은 스스로에게 그 책임을 물어 목숨을 끊었다.

  황현이 자결하기 전 남긴 절명시가 이 책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에는 죽음을 앞둔 황현의 심정이 절절이 묻어나온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500년 동안이나 이끌었던 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지 못 하고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저 한 구절에 오롯이 담았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선비 정신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저 공부만 많이 한 지식인이 아닌, 시대와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절감했던 지식인이 쓴 책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  망국의 시대를 직접 겪은 지식인이 붓으로 옮긴 생생한 기록을 읽으며, 그 망국의 시대를 거울 삼고 그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의 심정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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