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정리 - 잡동사니를 버리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
루스 수컵 지음, 김현주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나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 연세는 101세. 정확하게는 100년 하고도 7개월을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친 후 부모님께서는 할아버지댁 정리에 돌입하셨다. 그리고 그 정리는 한 달이 되어가는 오늘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집 한 채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니...

우리 할아버지는 뭘 주워오거나 하신 건 아닌데 대신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저장 강박증이 있으셨던 것 같다.

매주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할아버지 몰래 쓸모없는 물건들을 버리셨지만 할아버진 그때마다 몹시 못 마땅하게 여기셨었다.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라고 하시며 못 버리게 하셨던 것이다.

어렵게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해 보이는 것이 없고 버리기엔 너무 새것 같아 또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나보다.

그렇다고는 하나 막상 돌아가신 후 정리를 하면서 보니 요쿠르트 드신 플라스틱 용기는 다 씻어 말린 후 그것들끼리, 1회용 커피 드신 후 그 자잘한 종이 껍데기끼리, 컵라면 같은 것 조차 드신 후 그 용기들을 또 다 씻고 말려 그것들끼리, 그것도 뚜껑은 뚜껑끼리 그릇은 그릇끼리.. 이렇게 죄다 모아 일정량씩 묶어서 차곡차곡 쌓아두셨던 것들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나왔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그것들까지도 다 "언젠가는 쓸 지도 모를"것들이었으나 실제론 절대로 다시 쓸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차없이 모조리 버려질 것들이었다.

댁에는 쓰레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가스렌지가 4개, 냉장고가 2개, 아예 개봉한 적 없는 새 이불이 50채, 역시 새것인채로 있었던 황토매트, 밥솥, 청소기, TV 등의 가전제품, 모자 100여개, 가방이 100여개, 오래된 책 수백권, 그리고 가구들, 수백개의 볼펜 및 필기구, 지갑들, 옷들, 옷걸이들, 우산들, 그릇들, 소금, 설탕, 간장, 된장, 고추장, 기름... 비누, 샴푸, 수건들, 사진들, 문서들...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 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은 다 우리집에도 있고 우리부모님 댁에도 있고 안 가봤으나 우리 옆집에도 있을 테고, 살림을 하는 집이라면 저기에 열거한 것들은 기본으로 있고 거기에 더 얹어 뭔가가 훨씬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집만 해도 아이들 각자의 옷가지와 물건, 책, 책장, 일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텐트까지도 대체 몇개나 되는지...

할아버지댁을 정리하면서 "뭔 쓸모없는 것들을 이렇게 많이 이고지고 사셨나..."하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우리집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그것들이 내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까지 주고 있다. 내가 관리하고 정리하고 청소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까닭이다.

쓰지 않는 것들이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버린 후에 단 한번이라도 그것중 하나가 필요해지거나 하여 다시 구입해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리고 그 새 물건이 또다시 우리집을 채워 더 비좁게 만들까봐 걱정이 되면서 갖고 있던 것은 못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안다. 그것을 다시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99.9999......% 라는 것을.

이 책에는 내가 위에 쓴 것과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읽으면서 내가 썼나 싶을 지경이었다.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로도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정리하라" 하는 정리의 기술이나 방법 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공간을 바라보는 마음, 어떤 집 어떤 공간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가치관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정리란 단순히 아무것도 없거나 차례차례 쌓아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맞게 쓸모있는 공간 안에 꼭 사용할 것들로만 유용하게 채우고 사용하며 여유있게 사는 삶임을 밝히며 내가 살아가는 그 공간이 어떤 곳이길 원하는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정리하는데에 도움이 될 만한 방법 또한 제시하고 있고.

잡동사니를 버리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미니멀 라이프. 물건 뿐 아니라 감정과 관계까지도 다룬다. 비움의 기술을.

모두가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좋은 것을 많이 갖고자 하기도 한다.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이 많은 것을 가진데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잊고.

할아버지댁에 다녀와 우리집을 둘러보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불필요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물리적인 공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내 정신까지도 짓누르고 있음을 떠올리며 공간과 물건과 삶을 대하는 내 자세와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없어도 살 수 있고 없어도 행복하며 어쩌면 넓어진 공간만큼의 여유와 만족감이 더 커질수도 있음을 잊지 말고 늘리고 채우는 삶을 멈추고 버리고 나누고 비우고 정리하는 삶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