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걸어봐 인생은 멋진 거니까 - 19살 단돈 50유로로 떠난 4년 6개월간의 여행이 알려준 것
크리스토퍼 샤흐트 지음, 최린 옮김 / 오후의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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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내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내 두 발로 밟는 땅을 다 합하면 얼마나 될까 하는 것.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평생동안을 통틀어 오직 내 발로 걸어서 가본 거리는 얼마큼일까 하는 것이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근데 어림잡아 대충 생각해봐도 막상 내 발로 밟아본 땅, 그 거리가 얼마 안될 것 같았다. 비행기, 배, 기차, 버스.. 등등으로 이동한 걸 제외했더니 말이다. 그때 했던 생각이 나 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고작 그 정도 다녀보고 고작 그 정도 읽고(평생 읽는 책이 몇권이나 될까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일주일에 두 권씩 일년에 대략 100권씩 읽어도 100년을 산다한들 난 만권도 못 읽고 죽는 거였다. 한 해 출판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 정도의 사람과(평생 만난 사람중 이름 생일 등을 알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를 생각해 봄) 관계를 맺다 생을 마치는 존재이면서 내가 내 주제를 너무 몰랐던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음 내가 진짜 쓸데없는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할 때엔 이런 생각도 했다.

미국에서는 6년 정도 밖에 살지 않았지만 난 사는 내내 넘 힘이 들었고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귀국하기만을 바랐었다. 그땐 미래가 불투명해서 미국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생각하니 미국생활이 너무나 암울하게 여겨졌었다. 난 거기 사는 내내 돌아오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다 정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그곳에서의 삶이 굉장히 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아까웠고 떠나기도 전부터 그리웠다. 그래서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가서는 현지인처럼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돌아와 얼마쯤 지나고나니 일상은 다시 그냥 흔하고 평범해서 그다지 아쉽거나 아깝거나 귀하거나 그립게 여겨지지 않기 시작했다.

6년을 떠날 날만 기다리다 떠나기 직전에야 보이는 모든 순간과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던 경험을 교훈삼아 지금의 내 일상을 그렇게 소중하게,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건만.



난 늘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그럴 기회가 생기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미리 포기하곤 했다. 그 벽은 전부 내가 만든 것이었는데 어쨌든 난 늘 떠나지 못했고 대신 내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 게 가장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저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신 모험을 떠난, 나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게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곤 했다.



이 책은 19의 나이에 단돈 50유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 독일청년이 쓴 글이다. 그는 4년6개월을 다녔는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 이 그의 유일한 계획이었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해먹을 걸고 자고 길에서 빵 먹는게 일상이었더란),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하에 여행을 했다. 필요한 돈은 벌어서 충당하고 굉장히 아끼며 다닌듯 했다. 난 다른건 몰라도 잠자리, 먹을거리가 부실한 여행은 내키지 않는데 말이지. 그리고 나는 그렇게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면 가급적 안전하고 조금이라도 언어소통이 되며 가능한 한 아름답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런 나라들만 다녔을 게 뻔한데 그는 프랑스에서도 일주일만 머물렀을 뿐 아니라 한페이지 정도에만 간략히 프랑스에 들렸다고 써서 당황스러웠다. 그럼 이 사람은 어딜 다녔다는거지? 하고.



2013년 유럽을 시작으로 유럽, 대서양, 카리브해제도, 2014년 3월부터는 남아메리카, 2015년 4월부터는 남태평양의 섬들을, 그리고 2015년 11월부터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중동을 지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고 한다.

4년 6개월의 시간을 책 한 권에 담으려니 어디어디를 다녔고 거기서 겪은 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썼으련만 처음부분을 읽을땐 그저그랬다. 특별히 재밌지도 않고, 되게 긍정적으로 썼지만 나라면 저렇게는 못살았겠다 싶게 지낸 시간들이라 읽는 동안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점점 읽어가다보니 저자의 밝고 선한 에너지에 매료되어 갔고. 결국 나는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구경하고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까지 적었다. 독일어를 모르니 한국어로 당당하게. 내가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댓글로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한국말로 한 인삿말을 영상으로 녹화하여 그의 계정에 올려두었기 때문이었다. 구글 번역기라도 돌려 내 댓글을 읽었겠거니.. 그는 그렇게 다니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익혀가며 직접 일하고 벌어서 여행을 했다. 출발할때 고작 19살이었는데.

난 그의 두배도 훨씬 넘는 세월을 사는동안 고생을 사서 하거나 홀로 훌쩍 낯선 세상으로 발을 디뎌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새롭고 낯선 것으로의 도전과 모험 같은건 아예 시도해본적도 상상해본적도 없었던거 같다. 경험치의 차이인지 그는 책을 엮어낼 만큼 자신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는데 말이지. 그는 여행을 통해 다른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성숙해졌다고 쓰고있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웠고 크고 작은 선물에 대해 제대로, 깊이 감사하는 법도 배웠다 했다. 그는 여행을 마친 후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무척 신선했다.



반드시 세계여행을 무전여행으로 다녀야 크리스토퍼 샤흐트만큼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깨닫게 되는건 아닐것이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만 지낸다해도 내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는 것이겠지. 꿈과 바람으로만 지나치지 않고 실천해보는 용기도 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으며 베껴놓았던 구절들 일부를 소개해본다.

p.134 나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도록 돕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가지 유용한 팁을 주거나 중요한 만남을 주선하거나 그저 용기를 북돋우는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의 미래에 투자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작은 돌이 어마어마한 눈덩이를 만들 수 있다.

p.211 죽고나면 삶은 무슨 가치를 지니게 될까? ...난 결론을 내렸다. 사는 동안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베풀면서 삶의 가치가 생겨난다는 것을.

p.263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어를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다. 언어가 아시아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했다.

p.295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선을 행하거나 규율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대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에요.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 안에 소망이, 그리고 선을 행할 힘이 생겨요. 사랑만큼 우리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해요.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아는 만큼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건 없어요.

p.352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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